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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오늘의 운세’와 ‘정치적 올바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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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양에서도 우리의 ‘오늘의 운세’에 해당하는 ‘별자리 점(Horoscope)’ 난은 인기가 드높다. 매일 7000만 명의 미국인들이 신문에 나온 자신의 별점 운세를 찾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24일은 별점이 신문에 연재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브리티시 선데이 익스프레스’라는 영국 신문이 세계 언론사상 별점을 연재한 최초의 신문이다. 별점이 신문 판매에 도움이 돼 별자리 점 연재는 전 세계 신문으로 확산됐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의 운세’난을 펼치거나 클릭할 것이다. 맞는지 틀린지를 따져보기 위해 ‘오늘의 운세’가 맞은 날과 틀린 날을 달력에 O X 표를 쳐가며 운세 예측을 검증해 본 적이 있는 독자는 극소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오늘의 운세’의 ‘과학성’을 따져봤을 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문 지면상 60가지 경우에 대한 운세 예측만 하고 있지만 사주팔자에서 산술적으로 가능한 경우는 2600만 가지라고 한다.

역술 자체의 논리로도 의문점이 있다. ‘오늘의 운세’는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사주는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한다. 기준점이 다르니 운세 예측이 상반될 수 있다. 예컨대 ‘오늘의 운세’에는 ‘동쪽으로 가면 돈이 들어 온다’고 돼 있으나 실제로는 동쪽으로 가면 돈이 나가고, 돈이 들어오려면 북쪽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운세’가 사랑받는 이유는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신통하게 잘 맞는다”는 체험을 얘기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운세’를 잘 활용하면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승부할 것’ ‘작은 약속이라도 실천할 것’ ‘베풀며 사는 행복을 맛볼 것’ 등 어제 본지에 실린 ‘오늘의 운세’만 봐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매일 운세대로 자신을 경계한다면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운세에 자주 등장하는 구설수(口舌數)는 ‘남에게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다. 의미상으로는 내가 한 말 때문이 아니라 남이 한 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한 말 때문에 생기는 경우에도 많이 쓰인다. 가벼운 마음으로 말 실수를 했다가 논란에 휘말리는 것이다.

‘오늘의 운세’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다. 젊은 독자들이 잘 모르는 관재수(官災數·관청으로부터 재앙을 받을 운수), 횡재수(橫財數·뜻밖에 재물을 얻는 좋은 운수), 손재수(損財數·재물을 잃을 운수)와 같은 용어는 요즘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구설수 조심’ 대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라는 운수 예측이 등장할 날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은 인종·민족·종교·성별 등에 대한 편견을 담은 말을 가리킨다. 외국에서는 그런 말을 하면 여지없이 구설에 휘말린다. ‘오늘의 운세’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처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따지는 것도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을까. 세계화는 모든 것을 세계화시킨다.

아직 한국에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말을 따질 때가 아니다. 공직자들이 ‘막말’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천안함 관련 발언으로 경찰청장 후보자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국에서도 최근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에게 막말을 한 어느 주 하원의원이 사퇴했다. 말 실수를 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바른 말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의 운세’를 보고 매일 자신을 가다듬듯, 자신의 언어 생활을 매일 경계하는 데 해법이 있는 게 아닐까.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