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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킹 라이프'] 실존의 고민 담은 '영혼과 꿈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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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가끔은 '이 영화, 소개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을까' 싶은 작품이 있다. '웨이킹 라이프'가 그렇다. 올해 본 영화 중 수작을 꼽는다면 '웨이킹 라이프'는 꼭 포함될 것이다.

소개하자면, 감독 이야기를 하는게 이해하기 빠를 것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우리에게 에단 호크·줄리 델피가 출연한 '비포 선라이즈'라는 예쁜 소품으로 기억된다. 이번엔 실사영화가 아니다. 로토스코핑 기법을 응용한 애니메이션, 즉 실사영화를 찍은 뒤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가공한 작품이다. 디자이너와 여러 아티스트들이 달라붙어 일한 결과, 영화는 황홀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별다른 줄거리는 없다. 한 청년이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 하듯 대화를 나눈다. 전생과 영혼, 그리고 꿈에 대해서. 몽롱한 상태의 청년은 꿈에서 깨고 싶어하며, '이건 현실이야'라고 위로하기도 하지만 결코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꿈은 운명이다." '웨이킹 라이프'의 메시지는 이것으로 요약된다. 얼핏 몽상가로 보이는 남자가 친구와 학자, 그리고 행인을 만난다. 그들은 각자 고민과 철학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

예컨대 "인류의 숫자는 날로 증가 추세인데 그렇다면 환생은 수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같은 것이다. D H 로렌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작가들이나 앙드레 바쟁의 영화이론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웨이킹 라이프'는 미국 영화지만 정신적 뿌리는 유럽 문화에 더 가깝다. 팝 아트와 MTV의 스타일, 그리고 실존에 관한 고민이 하나로 녹아있는 것이다.

작품에선 '공중부양'모티브가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어느 몽상가의 백일몽 같은 것이며 예술의 수맥을 되짚으려는 연출자의 시선으로 읽힌다.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들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모습을 비춰 이채롭다. 에단 호크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2001년 뉴욕 비평가협회가 선정한 최우수 애니메이션 수상작. 원제 Waking Life.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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