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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일상 따스하게 포옹 판화가 오윤 회고展… 점토 조각품도 선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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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오윤(1946∼86)은 40년 짧은 삶으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목판화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나와 칼질과 나무 다루는 데 익숙했던 그는 몸 깊은 곳에서 짜낸 혼신의 힘으로 판을 새겨 그 정직함과 진실함으로 사람들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12월 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리는 '오윤 회고전'은 19 96년에 개최됐던 10주기 추모전 뒤 처음 마련된 작가의 개인전이다. 특히 70년대에 제작된 테라코타 조각을 함께 선보여 조각가 오윤을 되돌아보게 한다.

목판화에서 그랬듯, 그의 점토 조각은 맥을 정확히 짚은 작가의 힘과 깐깐함으로 곧추서 있다. 인물들은 제 속으로 단단하게 응축돼 삶의 고통조차 힘차게 껴안은 형상으로 나타난다.

한 많은 역사를 뼈마디로 한 어머니상을 연상시키는 70년대의 점토조각 '무제'는 80년대에 그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여하게 된 내력을 듣는 듯하다. 사실적인 내용에 선묘를 중시했던 그의 목판화가 이 조각 위에 겹친다.

오윤은 우리들 일상의 콧등 시큰한 몰골을 그대로 떠냈던 사실주의자였다. 그에게 미술작품이란 가난한 자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몸짓이었으며, 그들이 부릅뜬 눈으로 바라본 세상 그 자체였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허무하고 비통할지라도 다시 살아야겠다고 일어서는 민중의 본능적 힘을 익살스럽고 낙천적으로 묘사했다. 오윤이 도상화한 인물 판화들이 풍속화와 풍자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까닭이다.

현실을 칼칼한 칼맛으로 비판할지라도 늘 '덩더꿍' 춤사위가 흘렀던 그의 판화들은 오래 살아남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02-725-102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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