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빚 3조 상환유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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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채권단이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해 다시 빚을 자본금으로 바꾸고 이자 징수를 늦춰주는 채무재조정에 나섰다. 하이닉스의 연명을 위한 사실상의 부채 탕감이지만 채권단은 신규로 자금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좋은 조건으로 하이닉스를 매각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구조조정 자문사인 도이체방크는 26일 하이닉스의 매각과 사업구조조정을 함께 추진하되, 이를 위해 무담보채권의 절반인 1조9천억원을 출자 전환하고, 나머지 채권 3조원의 상환을 2006년 말까지 연장해주는 등 하이닉스 채무를 우선 조정해야 한다고 하이닉스 구조조정특별위원회에 보고했다.

이와 함께 1조1천억원의 비핵심자산 매각과 함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부 비메모리 부문의 매각을 사업구조조정 안으로 제시했다.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도이체방크는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 아래 2006년말부터 경영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다음달 10일께 채무재조정안을 결의하고, 출자전환에 앞서 내년 2월께 임시 주총을 열어 자본금을 20대1 규모로 감자(減資)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숨 돌리는 하이닉스=도이체방크 안이 성사되면 하이닉스의 금융부채는 4조9천억원에서 3조원으로 줄어들고 당장 내야 할 금리도 연 6.7%에서 3.5%로 경감된다. 연간 이자는 약 3천2백억원에서 1천억여원으로 줄어든다. 나머지 이자는 원금으로 전환돼 2006년 말까지 상환이 유예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채무재조정으로 은행들은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80% 쌓았지만 가급적 하이닉스의 처리를 최대한 늦춰 충격을 분산 흡수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투신사들도 그동안 채권의 50% 가량을 손실 처리한 데다 채권 탕감이 아니라 출자 전환인 만큼 지난 4월의 채무조정 때보다는 받아들일 만하다는 반응이다.

◇시장 반응=반도체 전문가들은 "이번 구조조정안이 나쁘진 않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창원 대우증권 연구원은 "부채 조정으로 하이닉스의 회생을 위한 한 가지 필요조건은 달성됐다"며 "그러나 하이닉스 회생의 변수는 역시 내년의 D램 경기"라고 지적했다. 채권단의 이번 하이닉스 처리 방안이 결국 고사(枯死)로 결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전우종 SK증권 기업분석팀장은 "하이닉스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약 1조5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게다가 회생에 필수적인 신규 투자를 영업이익 등으로 충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민후식 동양종합금융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줄어드는 이자부담 2천억원 정도는 비용 측면에서 하이닉스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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