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구려 유물展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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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분단 반세기 만에 고구려 유물들이 북한을 떠나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고구려 유물전은 남·북한의 문화 교류사(史)에 커다란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반세기 만의 '유물 상봉'은 일반인들에게도 값진 경험이겠지만 고구려학(學)과 북한 미술에 천착해온 전문가들에게도 떨림의 순간이긴 마찬가지다.

지난 19일 고구려 유물을 인계받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고려대 최종택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남포항에서 고구려 유물을 만났던 순간의 흥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남포항 외곽 보관장소에서 유물들을 목록과 대조하며 일일히 확인했다.

최교수는 "오후 4시부터 시작된 확인작업은 조명이 켜지지 않아 어둑한 상태에서 진행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캄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금동불상과 보관들을 상자에서 차례로 꺼내는 순간 광채가 느껴질 정도로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감상자의 입장이 아니라 '일'로 유물들을 접했지만 손이 떨릴 정도로 흥분과 감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기획위원이기도 한 선문대 이형구 역사학과 교수의 경우 교류에 무게를 두는 쪽이다. 그는 "그동안 남·북간에 공연·연주 등 문화교류는 빈번했다. 그러나 문화재의 직접 교류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고구려 유물전은 남·북 간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이어 "1985년 고구려 유물이 일본 5개 도시 순회전을 벌일 때 '왜 남한 땅에는 오지 않나'하는 아쉬움을 갖게 됐고 그후 꾸준한 노력의 결과가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됐다"며 '사적인' 느낌도 전했다.

이교수는 "북한이 문화 유산을 얼마나 엄격하게 관리하고 보존하고 있는지, 또 문화 유산에 대해 어떤 긍지를 가지고 있는지 '문화적인 주체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고구려의 웅혼한 힘과 기상을 느낄 수 있을 기회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최교수는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안에 들어서는 고구려 고분 모형 안의 벽화는 단순한 모사품이 아니라 평양 미술대학 벽화수복 전문팀이 달라붙어 '창조'해낸 또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전제, "벽화 수복팀이 최근 고분을 찾아 일일이 다시 계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복원해 내 벽화의 현재 상태, 북한의 연구 상황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여러 모로 의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의 금관 등 다른 시대의 유물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상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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