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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했던 시대 우리의 자화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추레한 치마 저고리 차림을 한 아낙네 얼굴은 옷매무새보다 더 풀기가 없다. 양산을 들고 고무신을 신은 후줄근한 그 어미는 멀리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입술을 달싹인다.

사진가 정범태씨가 찍은 '서울 동대문운동장 1965'는 베트남전에 피붙이를 보내야 했던 개발도상국의 아픔을 담담하면서도 처연하게 전하고 있다. 어느덧 이 사진 속 이야기들은 아득한 과거가 되고, 이 장면을 포착했던 리얼리즘 사진의 역사는 반세기를 넘기게 됐다.

1950∼60년대부터 활동해온 5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사진과 리얼리즘'전은 해방과 한국전쟁 공간에서 인간들에게 초점을 맞췄던 사실주의 계열 작가들의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김한용(78)·손규문(75)·안종칠(74)·이형록(85)·정범태(74)씨는 크게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으로 갈렸던 사진계에서 리얼리즘 쪽에 서 주제의식과 시대정신을 보여준 '신선회' 출신 사진가들이다.

전쟁고아들을 끈끈한 눈으로 바라보는 김한용, 서민들의 생활상을 역사 속에 밀어넣었던 정범태, 고단한 살림살이 갈피갈피를 따뜻하게 살폈던 손규문·안종칠·이형록씨는 사건의 기록과 주관적 해석을 넘나든다.

사진전과 함께 나온 사진집 『한국사진과 리얼리즘』(눈빛 펴냄)에서 사진평론가 정진국씨는 "세계화와 선진 도시문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취향과 유행이 그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려 드는 지금, 단편적이더라도 뚜렷하게 현실과 역사를 향한 맑고 소박한 창문을 우리 앞에 열어놓고 있는 이 사진들 앞에 서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12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미술관 소갤러리. 02-760-473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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