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윗선 규명 흐지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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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1일 김종익(56) 전 KB한마음 대표를 불법 사찰한 혐의(강요 등)로 이인규(54) 전 총리실 윤리지원관과 김충곤(54) 전 점검1팀장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원모(48) 전 조사관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달 5일 국무총리실이 검찰에 수사 의뢰한 지 38일 만에 중간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이 전 지원관과 김 전 팀장은 2008년 9월 직권을 남용해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부인의 뒷조사를 한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김씨 관련 문건이 2008년 7월 24일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김씨에 대한 불법 사찰이 당초 알려진 2008년 9월이 아니라 7월에 시작된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검찰은 지난달 9일 국무총리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이 전 지원관 등의 방에서 12개 컴퓨터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 중 7개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가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4개는 강한 자성 물질로 부팅이 안 될 정도로 망가졌고, 또 다른 3개는 파일 완전삭제 프로그램인 ‘이레이저’를 사용해 내용이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하드드라이브가 지난달 3일 총리실 자체 조사 직전에 손상된 것으로 추정했다. CCTV 녹화 영상을 통해 훼손 직전 사무실을 드나든 직원 2~3명을 증거인멸 혐의 용의자로 압축해 조사 중이다.

◆변죽만 울린 수사=이날 발표에서 ‘비선보고 윗선’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의 관련 여부는 빠졌다.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사팀은 ▶이 전 지원관 등이 입을 다물고 있고 ▶하드드라이브가 훼손돼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조회가능 기간(1년)이 지나 통화기록을 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경식 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이 전 지원관 등이 구속만기가 돼 기소를 하는 것이고 수사는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변죽만 울린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긴 힘들다.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이 2008년 가을 지원관실 워크숍에 참석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를 참고인 신분으로 한 번 소환 조사하는 등 형식만 갖췄다는 지적도 있다. 김씨에 대한 불법 사찰과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부인 뒷조사가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고, 누구에게 보고됐는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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