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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로 대통령 뽑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자신의 간판격인 국민경선제를 버렸다.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방식으로 '일반인 여론조사'카드를 그 대안으로 던졌다. 이에 鄭후보측은 '대의원 여론조사'방안을 역제의했다. 그렇지만 여론조사 방식을 실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핑퐁식 제의는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어떤 형태로든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여론조사의 사각지대인 오차 범위 내 결과가 나오면 골치 아프다. 흔쾌한 승복은 통상 오차 범위 밖인 5%포인트 이상 격차가 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적 문제를 떠나 여론조사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의미 부여 자체가 문제다. 여론조사를 결정적인 정치적 의사 표시로 인정하면 '선거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번거로운 선거 과정 없이 여론조사로 대통령을 뽑으면 된다'는 식의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의식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盧후보는 지금껏 "정치 노선·이념·원칙이 다르다"며 鄭후보와의 단일화를 멀리해 왔다. 굳이 하겠다면 경선을 통한 방법을 요구했다. 이런 盧후보가 원칙을 바꾼 것도 문제다. 鄭후보측의 역제의에 담긴 뜻도 미덥지 못하다. 상대방의 약점만 파고드는 인상이다.

단일화 문제는 두 후보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일 것이다. '1강(强)2중(中)'구도에서 2중인 盧·鄭후보 중 한명만 나가야 1강인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명분 다듬기는 여전히 뒷전이다.

극단적으로 갈리는 두 후보의 정치 이념·정책 노선을 어떻게 하나의 국정 운영 비전으로 묶을 수 있느냐 하는 진지한 고뇌와 토론은 별로 없다. 협상 테이블에는 단일화 방법론만 넘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선 단일화 협상은 어떤 방식이든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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