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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다면 살 좀 찐게 뭐가 나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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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나와 키가 거의 같은데도 15㎏ 쯤 체중이 적다. 내가 보기에, 그건 내 나이 남자의 연륜에 적합한 체중은 아니다. 그를 표준이라고 표현해 나 자신이 체지방 과다의 물렁해 빠진 족속임을 자백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사실 그의 젓가락 체형이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뭘 입어도 옷태가 안나고 추울 땐 더 가여워 보였다. 살짝 두둑한 살집이 주는 '부티'보다 샐러리맨의 가지런한 이미지만 신작로 먼지 일듯 풀썩거리는 게 오히려 안돼 보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를 만나기만 하면 이런 우월함이 한 수 접히고 마니 무슨 조화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만났을 때 그의 첫 마디는 늘 같다. "너 도대체 왜 그렇게 살쪘니?"

나는 살찐 몸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없던 살이 갑자기 복대처럼 나를 두른 것도 아니니 그의 대경실색은 괜한 트집일 뿐이다. 그때마다 늘 준비된 내 답변은 "너 말라서 보기 좋은 거 아는데 너처럼 보기 좋고 싶지 않아"이다. 그러나 내 대꾸가 완강할수록 자신의 몸에 대한 그의 자긍심은 더 부풀어가는 것이다.

몸에 관한 자의식이 만발하면서도 느슨해진 세포들을 치켜올려 매끈한 몸을 만들자는 강박증이 없는 건 분명 나태 때문이다. 누가 "운동은 하세요?"라고 물을 때 "기사 마감 때 회사 안에서 바쁜 걸로는 운동이라고 말 못하겠죠?"라고 구차하게 되물어봤자 이미 식은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 칼로리에 관해 숙고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다. 이 음식들이 불완전 연소돼 지방이 될지, 순수한 열량만으로 그칠지 계산에 서툰 채로 매일 머리 속이 바쁜 것이다.

어쩌다 저녁을 거를 땐 뭔가 죄를 면제받은 듯한 안도와 다음날 아침 그만큼 탈지(脫脂)된 몸을 상상하는 행복으로 후둘거린다. 그러나 고기를 곁들여 퍼마신 회식이나 뜻하지 않은 점심 풀 코스, 종일 냉장고 문이 헐거워지도록 여닫기 바빴던 휴일엔 홍수처럼 불어난 지방에 익사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봤자 좀 여윈들 표도 안나고 살이 더 붙은들 추할 것도 없는 몸이건만.

그러나 주변에서 다이어트라는 희대의 화두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죄많은 세대'인지라 누구라도 다이어트라는 막강한 신흥 종교의 열혈 추종자인 것이다.

사실 다이어트는 살의 분량이라는 미학적 쟁점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건강과 불건강, 절제와 탐욕 사이의 균형에 관한 문제다. 그러나 탐식하는 채로 나는 여전히 마른 몸이 부럽지 않다. 이번에는 골다공증이 차라리 더 무서우니까.

이충걸·『GQ KOREA』 편집장

norway@doo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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