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3>재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8. 신앙촌 쓰레기장 발굴(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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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쓰레기장을 발굴 조사한 소사 제1신앙촌은 지금은 없어져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신앙촌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보통 열차편을 이용, 소사역에 내려 비포장도로를 따라 30여분을 걸어가야 했다. 신앙촌은 특수 종교집단의 생활 근거지여서 외지 사람들은 마을입구에 마련된 안내소 격인 관리사무소에 방문목적을 신고해야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쓰레기장 사전 답사를 위해 삼불 선생의 인솔로 동기인 지건길(池健吉) 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과 함께 신앙촌을 찾았다. 관리사무소에 협조를 구하던 중 누군가 벽에 걸린 교주 사진을 보고 "예수를 흉내낸 사진 같다"고 말했다가 신앙촌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쫓겨날 뻔했다.

사진 속의 교주는 햇빛이 한줄기 떨어지는 가운데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레슬링 선수 만큼이나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의 관리인들이 '말실수'를 교주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스승께서 재빨리 "협조에 감사한다"고 얼버무리며 사무소를 황급히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발굴 과제인 '쓰레기장' 앞에 도착한 우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엄청난 쓰레기 산을 어떻게 파헤쳐야 할지 하늘마저 노랗게 보일 정도였다. 차라리 넝마주이 처지가 낫겠다는 자조가 절로 튀어나왔다. 서울역에서 열차를 탈 때만 해도 야외 놀이라도 가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쓰레기 더미를 마주하자 '차라리 인류학 팀으로 갈 걸'하는 불평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어쩌랴. 때는 늦었는 걸.

1965년 6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가로·세로 2m 크기의 구덩이 세곳을 2명이 한 팀씩 이뤄 쓰레기장의 맨 밑바닥이 나올 때까지 파내려갔다. 나는 지건길과 한 팀이었다.

발굴 첫날은 마침 아침부터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웠다.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땀 냄새를 귀신같이 맡은 파리와 모기는 앵앵대며 떼로 덤벼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파내려 갈수록 냄새는 더 참기 어려웠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강의실과 실습발굴에서 배운 '발굴의 기본'을 빠뜨리지는 않았다.

비닐봉지·군용 수통 뚜껑·이빨 빠진 플라스틱 빗·깨진 의약품 병 등 어디 한군데 쓸데 없는 넝마들을 '현대의 유물'쯤으로 취급, 하나하나 기록하며 수습해 나갔다. 작업을 마칠 때쯤에는 독한 오물 냄새에 코가 마비됐는지 악취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막상 학교로 돌아오니 적지 않은 분량의 쓰레기 유물들을 분류·정리할 넓은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생각다 못해 마침 당시 건립공사가 중단된 채 비어 있던 문리과 대학 구내 이공계 연구동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공계 연구동은 골조 공사를 마치고 옥상에 슬라브를 쳐놓은 상태였다. 3층 바닥 전체를 이용해 쓰레기들을 분류했다. 이미 계절은 늦가을로 접어들어 쌀쌀했다. 가끔씩 부는 바람에 열심히 분류해 둔 비닐봉지 등 가벼운 쓰레기가 땅바닥으로 날려가면 숨가쁘게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며 '넝마'를 주워오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쓰레기 자료를 카드에 기록·분류한 다음 할 일은 신앙촌 쓰레기장 가까이에 살고 있던 집들을 찾아가 설문서를 돌려 의·식·주 실태를 알아보는 방문 조사였다. 발굴을 통해 얻은 자료와 설문을 통해 취합한 자료를 종합, 의·식·주·문화생활 등으로 구분해 얻은 결론은 세부적으로 쓰레기 내용과 실생활 내용이 일치되는 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쓰레기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생활양식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복잡한 문화생활 형태가 선사시대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선사시대 쓰레기장 격인 패총(貝塚)을 발굴한 결과를 통해 당시의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전통적인 해석 방법이 매우 타당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됐다. 우리의 공동졸업논문은 A학점을 받았다.

기상천외한 논문 과제를 기획한 삼불 선생은 결과 활용에도 비상한 솜씨를 발휘했다. 논문을 요약해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 잡지 '현대 인류학(Current Anthropology)'에 게재하는 등 세계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어냈던 것이다. '김원룡식 연구법'이 통한 셈이다. 뿌듯했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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