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자 '가시방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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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요즘 일부 국내 펀드매니저들은 주가 반등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이달 초 주가가 급락할 때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대거 처분했는데 반등기에는 발빠르게 주식을 되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 11일 이후 주가가 바닥을 치고 반등하고 있지만 보유 주식이 없는 탓에 상승장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10일까지 기관투자가는 거래소 시장에서만 모두 2천억원 가량을 순매도했다. 이 때 종합주가지수는 11% 떨어졌다. 그러나 11일 이후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해 28일까지 종합지수는 16% 올랐다. 그러나 이 기간 중 기관은 1천2백억원 가량을 순매도했다. 반면 외국인은 이달 초부터 10일까지 3천5백억원 가량을 순매도했지만, 11일 이후 매수세로 돌아서 28일까지 8천4백억원 가량을 순매수했다.

이에 따라 반등 기간 중 주식편입 비중이 낮은 펀드의 수익률은 시장평균(종합주가지수)보다 훨씬 낮게 나타났다.

모 투신사의 경우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펀드 내 주식편입 비중을 80%(주식·선물 포함) 가량 낮췄다. 주식비중은 크게 낮추지 않았지만 선물을 매도해 사실상 주식편입 비중을 낮춘 효과를 거뒀던 것이다. 이 펀드는 지난 14일부터 28일까지 4% 가량의 수익률을 냈다. 이 기간 중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이 11%를 기록한 데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제때 펀드 내 주식비중을 높이지 못한 모 투신사의 펀드매니저는 "요즘 주가 올라가는 것을 볼 때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라며 "기관이 주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주가가 급등했던 지난해 10월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까봐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 비중을 크게 낮추지 않았던 펀드매니저들은 요즘 즐겁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디펜던스주식형 펀드는 지난달 12일 이후 이달 14일까지 주식 편입비율(주식·선물 포함)을 9%포인트 가량 낮췄다.

그러나 14일부터 28일까지 편입비율을 9월 초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린 덕분에 최근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이 펀드의 수익률은 14일부터 28일까지 12.8%를 기록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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