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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는 잊어라, 서른일곱 이젠 멀리 보고 천천히 뛸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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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14면

박찬호가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박찬호는 3-3으로 맞선 7회 마운드에 올랐으나 2안타를 맞고 1실점, 패전투수가 됐다. 피츠버그 이적 후 첫 경기였다. [피츠버그 AP=연합뉴스]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날아온 박찬호(37)의 이적 소식. 박찬호는 뉴욕 양키스에서 방출됐고, 새 팀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피츠버그 파이리츠 유니폼을 입었다. 양키스에서 나온 것은 아쉬운 일이다. 양키스는 야구선수 최고의 로망이다. 박찬호도 양키 스트라이프를 입고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는 꿈을 꿨다. 그런 그가 중부지구의 만년 하위 팀 파이리츠로 이적했다.

MLB 피츠버그에 새 둥지 튼 박찬호

메이저리그 30개 팀에는 해마다 열흘을 못 버티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선수가 부지기수다. 리틀야구부터 따지자면 메이저리거 탄생은 수천분의 1 확률이다. 박찬호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공주에서 바다를 건너가 17년째 뛰고 있다. 이 17년 야구드라마를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 박찬호의 야구인생은 연극으로 따지면 4막쯤에 해당한다. 1막은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선발투수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다. 2막은 2001년 6500만 달러(약 756억원)의 몸값 대박을 터뜨리고 아메리칸리그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기까지. 3막은 긴 부진 끝에 필라델피아로 옮겨 월드시리즈에 출전하고 내심 마지막 행선지이길 바랐던 양키스 유니폼을 입기까지 전개된 내용이다.

박찬호는 다저스와 텍사스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다저스에서 성공 시대를 연 그는 거액의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레인저스로 옮겼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05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됐다. 2007년엔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뉴욕 메츠와 50만 달러(약 5억8000만원)에 계약한 박찬호는 1경기에 등판한 후 곧바로 방출됐다.

노모 히데오

2008년, 박찬호는 친정팀인 다저스로 돌아갔다. 그는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투구 패턴과 스타일 변화를 꾀했다.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대신 땅볼을 유도하는 구질을 개발했다. 슬라이더·커브 등 변화구의 제구력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친정에서 안정을 찾은 박찬호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바라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성했다. 필라델피아는 그에게 마무리투수 바로 이전에 나오는 ‘셋업맨’의 임무를 맡겼다.

올해는 미국 최고의 명문 구단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연봉 120만 달러(약 14억원)라는 ‘헐값’에. 시카고 컵스 등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으나 뿌리쳤다. 그러나 또다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계약이 늦어지는 바람에 훈련이 부족했고, 시즌 초반 허벅지 뒤쪽 근육을 다쳐 3주 넘게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양키스에서 거둔 성적은 2승1패, 평균자책점 5.60이었다.

파이리츠는 박찬호의 일곱 번째 팀이다. 양키스에서 나올 때는 자칫 올해 빅리그에서 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다. 운 좋게 메이저리그에 잔류할 기회를 잡았다고 봐도 좋다. 비록 시즌 도중 방출이라는 시련을 맞았지만 그에겐 베테랑의 경험이 켜켜이 쌓였다. 파이리츠는 박찬호의 노련미를 높이 샀다. 파이리츠는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었던 지난 1일보다 훨씬 전에 옥타비오 도텔, 하비에르 로페스 등 베테랑 불펜투수를 처분했다. 파이리츠는 1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7회 불펜진이 6실점하며 무너져 4-9로 패하자 즉시 박찬호와 계약했다고 한다.

염원하던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박찬호는 기록 도전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에 가속을 붙이게 됐다. 통산 122승을 기록하고 있는 박찬호는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지닌 아시아 선수 최다승(123승) 경신에 도전한다. 박찬호는 다저스와 필리스에서 중간 계투로 보직을 완전히 바꾼 뒤에도 “은퇴할 때가 되면 노모의 기록을 깨고 싶다”라고 말했다.

물론 중간 계투를 맡은 투수이므로 언제 승리를 추가할지를 정확하게 예상할 수는 없다. 박찬호는 파이리츠 불펜에서 필승 계투조로 기용될 전망이다. 자연히 등판 기회도 많을 것이다. 팽팽한 접전 상황이나 팀이 앞서고 있을 때 출전한다면 승리 투수의 요건을 채울 가능성이 크다. 물론 7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1이닝 1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된 데서 보듯 승리는 쉽지 않다.

파이리츠가 내셔널리그 소속이라는 점도 박찬호에게는 유리하다. 박찬호는 양키스나 레인저스 같은 아메리칸리그 팀보다 다저스·필리스 등 내셔널리그 소속 팀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주로 선발투수로 출전한 박찬호는 통산 122승 가운데 113승이 선발승이다. 불펜투수로 활약한 최근 3년 동안 구원승은 일곱 번이었다.
박찬호가 노모의 통산 최다승 기록을 넘어서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박찬호와 노모는 언제나 비교 대상이었다. 1995년, 노모는 자국 리그 선수의 해외 진출을 어렵게 하는 일본프로야구의 족쇄를 깨고 은퇴 후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방식으로 빅리그를 밟았다. 박찬호는 한 해 앞선 94년에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노모는 95년 신인왕을 차지했으나 부상 등으로 인해 구위가 떨어진 98년 쫓겨나듯 다저스를 떠나 뉴욕 메츠로 갔다. 노모가 떠난 자리에 박찬호가 에이스로 우뚝 섰다. 이런 인연으로 엮인 박찬호와 노모는 대만 출신의 왕젠밍(현 워싱턴 내셔널스)과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등장할 때까지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명의 간판이었다.

노모는 2008년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서 내려왔다. 나이는 마흔이었다. 박찬호는 올해 서른일곱이다. 한번도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이 없는 박찬호가 노모 이후의 또 다른 모습을 내심 꿈꾸는 이유다. 폭풍과도 같았던 전성기는 이제 박찬호를 떠났고 보직도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바뀐 상황이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 올린 소중한 기록들은 여전히 남아 현재 진행 중이다.

노모는 마흔에 열두 번째 메이저리그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서른일곱 박찬호는 올해 벌써 열일곱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라는 마라톤 경기를 하는 주법이 다르다. 박찬호의 목표는 천천히 길게 뛴다. 은퇴할 때 노모의 나이가 되려면 아직 3년이 남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내년 재계약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찬호는 자신의 둥지를 찾기 위해 분주한 오프시즌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피츠버그 가제트’의 데얀 쿠버세빅 기자는 일간스포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찬호가 내년에도 피츠버그에서 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팀의 추락을 막기 위해 임시로 영입한 투수임을 강조한 것이다. 파이어리츠는 중간 계투 베테랑에게 100만 달러 이상을 지급하는 팀이 아니다.

박찬호는 파이리츠 이적 직후인 6일(한국시간) 개인 홈페이지에 “기회가 다시 왔다고 시련이 끝이 난 게 아니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분명히 큰일을 위해 하늘에선 마음 다시 제대로 잡고 가라고 하셨나 보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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