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4천억 수사 외압說에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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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억달러 대북 지원 의혹' 고소 사건과 관련,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검찰 간부에게 축소 수사를 요구했다"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주장이 나오자 검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검은 공식적으로는 "鄭의원 주장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鄭의원의 추가 폭로 여부와 4억달러 계좌 추적과 관련한 여론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눈치다.

"이귀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이 李위원장에게서 '계좌추적을 하면 사건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명예훼손 사건 수사로 한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鄭의원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번 의혹은 일파만파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범죄 정보를 총괄하는 李기획관은 매일 아침 검찰총장에게 각종 정보를 직보하는 만큼 검찰이 수사 대상인데도 정부·정치권을 의식해 수사하지 않았다는 새로운 의혹에 휘말릴 수 있다.

李기획관은 23일 기자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채 대검 공보관을 통해 "이달 초·중순 李위원장과 통화한 사실은 있다. 하지만 李위원장이 통상적인 사건 처리 절차를 물어와 일반적인 절차를 알려줬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李위원장으로부터 사건 축소 요구를 받은 적이 없고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李금감위원장도 "민주당 한광옥 최고위원과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국정감사 때 국회에서 증언한 내용이 문제가 되는지가 궁금해 통상적인 법률절차를 문의했을 뿐이다. 나는 수사 축소를 요구할 만한 자리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을 포함한 법조계에선 검찰이 4억달러 지원 의혹의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이번 의혹은 대선 후보가 연루된 것이 아닌 만큼 대선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명예훼손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계좌 추적 실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예결위원회에 출석한 김각영 법무차관은 계좌 추적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사견임을 전제로 "필요시 계좌 추적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변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金차관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법무부 공보관실은 해명자료를 통해 "계좌 추적은 수사와 관련된 내용이어서 검찰이 수사 진행 과정에서 판단해 할 수 있다는 원론적 견해의 표명이었다"고 밝혔다.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은 "아직 계좌 추적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소극적인 입장이다.

서울지검은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각각 형사4부와 형사9부에 나눠 배당했다. 이를 두고 "한곳에 모아 배당하지 않은 것은 수사 의지가 없다는 증거"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韓최고위원의 명예훼손 고소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형사4부는 이날 피고소인인 嚴전총재에게 30일 오전 검찰에 출두하도록 통보했다.

김원배·전진배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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