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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쿵푸 허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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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쿵푸 허슬
감독 : 저우싱츠
주연 : 저우싱츠.원화.원추
장르 : 코미디 등급 : 15세
홈페이지 : www.kungfuhustle.co.kr
20자평 : 저우싱츠의, 저우싱츠에 의한,저우싱츠를 위한 영화

지난 4일 방한했던 홍콩 영화의 희망 저우싱츠(周星馳.43)는 매우 밝아 보였다. 전작 '소림축구'(2001년)에 이어 국내에서 13일 개봉하는 '쿵푸 허슬'로 꺼져가던 홍콩 액션영화의 불씨를 지핀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할리우드에 직접 진출할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를 잘 만들면 그만"이라고 대답했다. 작품이 중요하지 장소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림축구'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 메이저 영화사인 컬럼비아트라이스타가 제작비 300억원을 투자한 '쿵푸 허슬'에는 저우싱츠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다. 보기에 따라 유치찬란한 코미디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의 과장된 웃음 속에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숨어 있다. 하루하루 삶은 힘겹지만,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우리의 초상이 담겨 있다. 그는 "내 상상력의 원천은 일상의 세밀한 관찰"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가 대단한 작가의식으로 무장한 영화인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는 대중의 기호를 발 빠르게 파악하고, 또 이를 영상으로 옮기는 데 재주가 뛰어난 감독이자 배우일 뿐이다. '쿵푸 허슬'은 그런 그가 홍콩영화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지구촌 영화팬과 함께 호흡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을 뿜고, 땅을 갈랐던 축구공을 내세운 '소림축구'의 활달한 상상력이 '쿵푸 허슬'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쿵푸 허슬'에서 제작.감독.감독.연기 1인 4역을 해낸 저우싱츠의 특기를 따져보면….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쿵푸 허슬'은 장편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할리우드가 '스파이더맨''엑스맨''배트맨' 등에서 마블 코믹스를 즐겨 인용하듯 저우싱츠는 관객의 눈과 귀를 확장시키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화면을 채운다. '소림축구'의 그를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기발한 장면이 넘쳐흐른다. 엄청난 고함(사자후) 하나로 강호의 고수를 간단히 제압하고, 하늘 저 높은 곳에서 강풍을 날려 땅바닥에 커다란 손자국을 새겨놓는다. 발길질 한 번에 건물 바닥이 갈라지는 건 예사. "애들 장난하나"라고 코웃음 친다면 천진한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저우싱츠는 어린 시절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끼고 살았다.

낮은 곳에 대한 애정='쿵푸 허슬'에서 주목되는 건 1940년대 상하이 빈민들이 모여 살았다는 돼지촌이다. 마을 이름처럼 돼지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사는 곳이다. '소림축구'에서 퇴락한 고수들을 모아 축구단을 만들었던 저우싱츠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돼지촌에 무협의 달인들을 집결시켰다. 평소엔 재단사.만두장수.아파트 주인 등 볼품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정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협객으로 돌변한다. 180도 달라진 그들의 모습에 포복절도의 웃음이 터진다. 24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돼지촌은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는 저우싱츠의 기억을 되살렸다는 후문. 황당무계한 액션이 찡한 여운을 남기는 건 밑바닥 인생에 대한 따뜻한 눈길 때문이다.

중국적인 것이 세계적='쿵푸 허슬'에는 600여컷의 특수효과가 사용됐다. 컴퓨터 그래픽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할리우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발달한 테크놀로지를 영화에 활용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추세. 그보다 중국 전통무술을 현대적 언어로 변용시킨 저우싱츠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이소룡 식의 정통액션이 그리울 수 있으나 저우싱츠 식의 유연한 몸짓도 세계에 통하는 법. 부처의 힘을 원용한 '여래장법' 역시 또 다른 볼거리다. 벌써 '쿵푸 허슬 2'의 제작 소식이 들린다. "한국적인 것을 보편적 소재로 활용하라"는 그의 충고는 그냥 나온 게 아닐 터.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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