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유전자감정 회사에 손배소 승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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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왜 아내와 아이들을 믿지 못했는지 제 자신이 미울 따름입니다."

사설(私設) 친생자 감정 업체의 엉터리 검사 결과로 인해 가정 파탄을 맞은 安모(44)씨는 17일 검사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3부)으로부터 "검사 업체는 安씨에게 1천5백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에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安씨가 유전자 검사 업체인 I사를 찾은 것은 2000년 3월. 주위 사람들로부터 "두 자녀 모두 당신과 닮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오던 그는 잡지 광고를 보고 이 업체를 방문했다. 그때만 해도 아내를 의심하는 생각보다는 개운치 않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건강검진이라고 속여 머리카락과 손가락 지문을 채취해 I사에 제출했다.

보름 후 安씨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듣게 됐다. I사 관계자가 "아이와 엄마 사이에는 친생자 관계가 성립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날 이후 安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부인과 다투었고 손찌검까지 했다. 참다 못한 아내는 결국 지난해 봄 집을 나가고 말았다.

지난해 8월 이혼 서류를 준비하던 그는 이혼 전에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과 함께 고려대 법의학교실을 찾아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安씨는 '자녀 두 명 모두 친생자가 99% 이상 확실하다'는 결론을 받은 것이다. 安씨는 첫 번째 결과가 나올 때보다 더욱 참담했다. 그는 즉시 I사에 검사 결과의 신뢰도를 놓고 따지자 이 업체는 수개월 뒤 자신들의 실수임을 인정했다. 安씨는 무책임한 업체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생각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I사 측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전진배 기자

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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