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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외교 외치면서 … 서울 본부는 정원보다 인력 넘쳐나고, 재외공관은 모자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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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2008년 이후 자원 외교, 국격 외교를 강조해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선두에 섰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자원 대륙인 아프리카와 국제외교 무대에서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 중남미 지역의 ‘외교 하드웨어’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앞줄 오른쪽)과 해외주재 대사 및 1인 공관장 117명이 2월 서울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감사원이 4일 발표한 ‘외교부 본부·재외공관 운영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대사관·영사관 등 재외공관 수가 1991년 아프리카 18곳, 중남미 21곳에서 지난해 13곳, 20곳으로 오히려 5곳, 1곳씩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 세계 대한민국 재외공관이 141개에서 156개로 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석유 공급처이자 주요 수출 시장인 중동지역의 재외공관도 91년 이후 지난해까지 18곳에서 단 한 곳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규모는 경쟁국에 크게 못 미친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리카 국가들에 100억 달러 차관 제공을 약속하며 자원 확보전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은 아프리카에 42개 공관을 설치했다. 일본도 2007년 이후 아프리카에 공관 6곳을 더 늘린 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특히 외교 인력의 배분에서 편중과 불균형이 심각했다. 91년 이후 지난해까지 전체 외무 공무원은 1752명에서 1923명으로 늘었지만 아프리카 지역의 외무 공무원은 88년 70명에서 올 2월 46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 때문에 주세네갈 대사관에선 직원 4명이 공관이 없는 감비아, 기니비사우, 말리 등 인근 5개국 업무까지 관장하고 있다. 반면 외교부는 고위 공무원을 본부에 정원보다 27명 더 많게, 재외공관들에 정원보다 33명 적게 배치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2007년 본부와 재외공관에 고위 공무원단을 배정할 당시 재외공관에 과도하게 배치했다”며 “이를 해소하려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본부에 대기 인원 등으로 다소 과도하게 배치했다”고 말했다.

중동에선 실무 능력이 문제로 드러났다. 감사 결과 현재 스파이 혐의 논란으로 외교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리비아와 주요 석유 수입국인 이란·쿠웨이트, 군을 파병했던 이라크에선 공관 내 외무 공무원 중 현지어가 가능한 인력이 전무했다.

또 91년 이후에 현지 대사관이 폐쇄된 21개국은 예외 없이 아프리카·중동·중남미 국가였다. 감사원이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액을 비교한 결과, 대사관이 폐쇄되기 전해에 비해 폐쇄된 다음 해에 총 13억2000만 달러가 감소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99년 우리가 주볼리비아 대사관(2008년 재개)을 폐쇄하자 볼리비아 정부도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을 폐쇄하는 등 제3세계 국가들이 공관 폐쇄를 비우호적 조치로 간주해 국제 행사·회의 유치 등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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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빈 틈이 생긴 이유는 90년대 들어 중국·동구권 개방으로 아시아·유럽 국가의 외교적 비중은 커진 반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재외공관을 축소해야 할 상황에서 정부가 아프리카·중남미 공관을 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풍토병과 열악한 근무 환경 등 외교가에서 이들 국가가 ‘기피 지역’이 된 점도 작용했다고 감사원은 분석했다.

외교안보연구원 고재남 교수는 “지정학적 특성과 남북 분단으로 우리 외교가 주변 4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지만 글로벌 코리아를 추구하는 이제 예산·인력 배정을 확대해 소외 지역에 대한 외교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와 관련, 이날 외교통상부에 아프리카·중남미 공관을 점진적으로 확충하고, 재외 공관별 인력을 분석해 적정 인원을 배치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IMF 외환위기 당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불요불급한 공관을 폐쇄하게 됐으나 2008년부터 신흥시장 개척, 에너지 협력 외교 등을 위해 아프리카 지역에 공관을 우선 증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그 결과 카메룬·콩고민주 대사관을 재개설했으며 앞으로도 아프리카 지역 공관을 추가로 증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병건·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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