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 사장님을 고발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코카콜라 한국지사의 법무담당 이사로 일하다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보니 이전 회사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주먹구구식 경영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한 코스닥 등록기업의 상근 감사로 재직 중인 변호사 김지수(41·사진)씨.

그는 지난 7월 서울지검에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모 사장을 업무상 배임과 증권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 기업 풍토에서 감사가 자기 회사 사장을 고발한 것은 신선한 '도발'이었다.

金감사는 외부에 고발 사실을 알리지 않고 회사 측과 3개월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2년 만에 2천억원을 까먹는 무리한 투자를 하는 CEO의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金감사가 사장을 고발한 지 열흘 뒤 금융감독원은 "사장이 자신의 아버지와 전·현직 임직원들과 함께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손실을 회피한 혐의가 있다"며 사장과 관련 임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金감사가 고발한 사장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 우선 1999년 10월 이 회사의 미국 현지법인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당시 회계 자료를 작성하면서 미국 법인 지분율이 48.2%임에도 56%로 허위 기재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그해 11월 코스닥에 허위 공시하고 한달 뒤 금감원에 제출한 유가증권 신고서에도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고 그는 밝혔다.

金감사는 "허위 공시로 현지법인의 경영권을 완전히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회사의 주식은 주당 3백만원(액면가 5천원 기준)을 호가하는 등 코스닥의 '황제주'라는 별칭을 얻었고, 대규모 펀딩을 통해 3천7백억원의 자본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2000년 2월 허위 공시를 무마하기 위해 미국 법인의 주식 13만주를 미국 벤처투자회사에서 매입하면서 이중 계약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둘째 혐의다.

실제로 주당 1백달러에 샀으면서도 허위 공시한 잘못을 숨기기 위해 1달러도 안되게 산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장은 '2000년 1월에야 공시가 잘못된 줄 알았다'고 변명했으나 그가 이전부터 매달 한차례씩 관련 서류에 서명한 것으로 봐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게 金감사의 주장이다.

그는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따지자 사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회사 주식 1백만주를 내놓겠다고 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아 직접 고발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2개월 후면 공소시효가 끝나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할 수 없게 되는 만큼 검찰 수사가 조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회사 사장은 "법률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보며,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형사9부는 이 회사 사장을 출국금지하고 관련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金감사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87년부터 국무총리 비서실에서 5년간 근무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96년에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귀국해 법무법인 태평양을 거쳐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의 법무담당 이사로 있다가 지금의 벤처기업으로 옮겨 일해 왔다.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