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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소곤소곤 연예가] '타잔'의 추억, 가수 김현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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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자장가 소리가 엄마보다 더 감미로울 것 같은 아빠, 가수 김현철. 그래서인지 그의 20개월 된 아들 이안이는 아빠의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맨발로 현관까지 달려나와 품에 꼭 안겨 입을 맞춘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순간 그의 가슴 한 쪽이 뭉클 시려온다.

30년 전 어느 늦은 밤. 여섯 살 꼬마 현철은 2층 침대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졸린 눈 비비며 아버지 퇴근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앗, 아버지 오셨구나. 그래서 제가 나가 현관문 열어드린다고 소리쳤죠. 그런데 반가운 마음이 앞서 그만 2층 침대에서 뚝 떨어졌어요."

턱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아버지는 구두 벗을 겨를도 없이 다친 현철을 업고 뛰었다. 서울 한남동 언덕을 한걸음에 달려 내려온 아버지의 눈에서는 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등에 업혀 울고있는 제게 술 마셔서 미안하다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 잘못이 아닌데 그때는 아버지가 제게 왜 사과하는지를 잘 몰랐죠. 저도 아들을 보니까 이제야 그 맘이 이해돼요."

병원에 도착해 다섯 바늘을 꿰매었다. 상처에 놀라고, 주사에 놀란 현철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아버지는 그런 현철의 어깨를 꽉 잡아주시며 "너는 타잔이다. 그러니까 울면 안되지."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멈췄다. 타잔은 당시 남자 어린이들에겐 가장 용감하고 멋있는 최고의 우상이었던 것.

그렇게 울면 안된다고 가르치셨던 아버지. 그런데 지난해 10월, 현철은 아버지 앞에서 또 울고 말았다.

"아버지가 피부암으로 1년 6개월을 투병하셨는데 숨쉬는 것조차 힘겨워하시더라고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앙상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죠. 아버지도 타잔이에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한번도 그때의 일을 얘기 한적 없었지만, 부자(父子)는 30년 전 타잔의 용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서로의 뺨에 눈물로 흘러내렸고,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요즘 그의 아들 이안이는 자동차에 푹 빠져 있다.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손에서 놓지 않는 자동차모형은 바로 그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것이라고. 발가락은 물론이고 취향마저 닮은 것이 신기하고, 놀랍고, 기특하다. 이 아이가 또 어떤 유년의 기억을 꺼내줄지 궁금하단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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