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 반란'에 뜨거운 갈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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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2명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접하면서 떠오른 단어는 '꼴찌들의 반란'이었다.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76)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는 도쿄대 물리학과를 꼴찌로 졸업했다.

그는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명'했지만 고등학교 때도 교칙위반을 밥 먹듯이 했다는 것을 보면 학창시절엔 문제아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학사출신으로 처음 화학상을 받게 된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3) 시마즈(島津)제작소 연구원도 도호쿠(東北)대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 유급한 경험이 있다. 학창시절 교수·친구들은 그에 대해 "성적이 우수하지는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런 두사람이 빛나는 업적을 일궈낸 것을 보면 학교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역사적으로도 학교의 문제아가 큰 일을 한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도 초등학교 3학년때 퇴학 당한 후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학업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경력을 매우 중시하는 일본사회에서 대학 전공(전기공학)아닌 화학을 연구했던 다나카는 아마도 그동안 많은 서러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새롭게 시도해보려는 창의성과 '연구벌레'란 말까지 들을 정도의 노력으로 우뚝 섰다. 주변에서 "노벨상 수상 연구내용을 논문으로 쓰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 권하자 "논문 쓸 시간이 있으면 연구하겠다"고 한 다나카의 대답은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처럼 들린다. 그가 소속된 시마즈 제작소의 주가는 11일 20% 가까이 폭등했다. 고시바 교수의 수상에 대해서도 "그의 상상력,끈질긴 실행력,분석능력이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아사히(朝日)신문(9일자)은 평가했다.

물론 학업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도 노력의 결과이고, 실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그러나 긴 인생에서 보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특히 창조성이 중시되는 21세기 '디지털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못지 않게 학벌사회 풍토가 만연한 일본은 요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로 요란하다.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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