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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씨와13명의독자들그리스·이탈리아 神話기행-'神들의무대'서배운역사지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에 '군불을 때' 최근 독서시장에 신화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으로 평가받는 소설가 이윤기(55)씨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3일까지 8박 9일간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자신의 베스트셀러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1·2』(웅진닷컴)를 읽은 독자 열세명과 함께였다.

신화(神話)라는 이름의 자전거 타는 법을 이씨가 짐받이를 잡고 따라오는 가운데 더듬 더듬 익힌 독자들에게 이번 그리스·로마행(行)은 능숙한 '자전거 운전'의 경지를 맛보게 해 준 흔치 않은 기회였다.

아폴론 신전·올림피아등

신화의 현장 직접 밟아

그리스인들이 전쟁 등 거사를 앞두고 신의 판단(신탁:神託)을 구했던 델피의 아폴론 신전,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귀족들이 체력 경쟁(올림피아드)을 통해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현장인 올림피아의 스타디움, 상·하수도는 물론 수압 조절을 통해 물이 솟아나는 샘까지 갖췄던 2천년 전 첨단 문명 폼페이의 유적, 기독교 문명의 찬란한 결집인 로마의 바티칸 성당 등. 책으로 접했던 신들의 무대, 역사의 현장을 이윤기라는 일급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직접 밟은 것은 일종의 개안(開眼)과도 같았다.

이씨도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수년 전 혼자서 그리스·로마의 신화 현장을 찾아 다닐때는 솔직히 깜깜한 어둠 속을 홀로 걷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우군이 엄청나게 많아져 든든하고 각별했다"는 것.

이씨의 『신화 1·2』는 80만부 넘게 팔렸고,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작가정신)·『무지개와 프리즘』(생각의 나무) 등 이씨의 또다른 신화 버전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올 만큼 이씨는 요즘 출판가의 인기 작가다.

신화 여행 참가자들은 이씨의 현장 설명을 통해 '그리스 신화가 결코 동양인의 눈에도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는 점을 곱씹게 됐다.

9월 26일 델피의 박물관에서 이씨는 "지구의 배꼽을 상징하는 석물(石物)인 옴팔로스의 문양(紋樣)이 중국 문물에도 등장한다"고 소개했다.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가 지구의 중심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날린 두마리의 독수리가 마주친 지점에 세웠다는 옴팔로스의 표면은 올록볼록한 매듭 형태의 줄들이 그물처럼 교차하는 모습이다.

이씨는 "중국의 황제를 상징했던 사자가 안고 있는 물체 표면에도 같은 문양이 나타난다"고 소개했다.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교류가 있었다는 게 이씨의 추론이다.

"신화가 친숙해졌다"

참가자들 이구동성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신화적인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씨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패러디가 주변에 숱하다고 소개했다.

로마의 바티칸박물관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쥐고 있는 페르세우스상이 서 있다.

지난 2일 이씨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수퍼맨에 등장하는, 반사된 자신의 안광(眼光)을 쐬고는 파멸한 악당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의 끝이 뱀머리였던 신화 속 괴물 메두사의 현대적인 변용"이라고 소개했다.

아테나 여신의 총애를 받은 페르세우스가 물체의 모습을 반사하는 방패를 들이대 메두사의 위협적인 눈빛을 피한 후 메두사를 처단할 수 있었던 신화 내용을 패러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씨는 "신화는 일종의 관념의 시운전장으로, 후대인들의 마음 밑바닥을 뒤흔든 내용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내용은 사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덧붙였다.

그리스 신화 중 제우스와 주도권 다툼을 벌였던 거인족 신들은 후대에 냉대받은 반면, 술의 등장과 함께 디오니소스는 각광받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근원적·원초적 감정을 건드린 그럴 듯한 거짓말들이 살아남아 오늘날 신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테네→올림피아→나폴리→로마'로 이어진 9일간의 일정은 빡빡했다. 아테네에서 올림피아로, 로마에서 나폴리로 이동할 때는 하루 대여섯 시간씩 차를 타야 했다.

이씨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신화를 이해해 우리 문화의 깊이와 두께가 두터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테네·로마=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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