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달갑잖은 기계류 흑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나라도 이제 반도체.휴대전화.선박.자동차.철강 등 주요 공산품에서는 어느 정도 수출 강국임을 뽐내게 되었지만 정작 이런 물건들을 만드는 데 쓰이는 일반 기계 분야에서는 매년 무역수지 적자를 면치 못한 게 사실이다. 공작기계. 섬유기계 등 기계 산업의 취약한 기술력으로 인해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 기계류에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무역흑자를 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반기계는 지난해 1~11월 중 무역수지가 약 6억달러 흑자를 기록해 이변이 없는 한 지난해 전체로도 흑자를 냈을 것으로 추산됐다. 일반기계류의 흑자는 무역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이 분야에서 수출은 46%나 급증했지만, 수입 증가는 24%에 그쳤다. 특히 광학 기계와 건설중장비의 중국 수출이 급증한 것이 흑자 전환의 요인이 됐다.

하지만 이 지표는 '국내 산업 공동화'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47억달러를 기록한 일반 기계류 수입은 경제가 한참 호황이었던 1995년(205억달러), 96년(201억달러)에 비해 크게 못 미친다. 최근 중국으로의 이전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섬유기계의 경우 2003년에 비해 지난해 수입이 절반 이상 줄었다. 물론 국내 기계 산업의 발달로 일본산 수입품을 국산 제품으로 조금씩 대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분야에서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국내 투자 부진과 무관치 않다. 마침 이날 한국건설기계공업협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올해 경기 침체로 건설기계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7.5% 줄 것으로 전망했다.

기계류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산업현장에서 다른 물건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물건이다. 외국의 좋은 장비와 기술을 사다가 좋은 물건을 만들어 그 이상의 이익을 남긴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이날 전해진 기계류 흑자 전환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이 같은 까닭에서다.

윤창희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