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거짓말 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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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방부는 북한의 6·27 서해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국군 5679부대의 보고가 축소·은폐됐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던 한철용(韓哲鏞·육군 소장)부대장을 해임하는 한편 진상규명에 착수했다. 국방부와 여당 측은 韓부대장의 증언을 평가절하하면서 그의 군기밀 누설행위에 대한 위법성을 부각하고, 그와 한나라당의 연계 의혹으로 몰고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 보면 이 사태의 가장 본질적 문제는 김동신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합참 정보본부장이 북한의 서해 도발 징후를 탐지해낸 5679부대의 보고 내용을 축소·묵살·무시했느냐에 있다. 군은 어떤 경우에도 외부의 도발로부터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고, 또 지키기 위해 만전의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첩보수준이라 해서 이를 깔아뭉갰다면 이 또한 문제다. 북한군의 이상동향이 포착됐다면 비록 불확실한 첩보라도 이를 챙겼어야만 했다. 당시 국방 수뇌부가 군의 이 같은 일차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북의 도발을 받았고, 아까운 희생자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진상 규명은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韓장군의 기밀누설, 야당과의 연계성 여부는 곁가지다. 본질은 진실이 뭐냐, 보고가 축소·왜곡됐다면 그 요인이 뭔가에 있다.

또 하나는 상명하복의 군 명령체계에서 韓부대장이 이를 위반했느냐는 점이다. 별로 중요치 않은 첩보를 올려 놓고 상부에서 깔아뭉갰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면 이는 지휘체계상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위기상황을 알리는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부가 햇볕정책을 고려해 삭제 지시를 했다면 이는 명령 불복종에 속하는 일이 아닌 또 다른 중대사에 속한다.

또 군 내부가 보고 내용의 축소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金장관 옹호의 다수파와, "지시했다"는 韓부대장 지지의 소수파 양쪽으로 갈리는 현상도 여간 개탄스럽지 않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단은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들이 한점 의혹없이 그대로 밝혀져야 또 다른 북의 도발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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