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세계 여성운동 代母 스타이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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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가 만난 한국 여성들은 한결같이 에너지와 활력이 넘쳤습니다. 이화여대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선 한국 여성의 밝은 미래를 보았고, 정신대 할머니들에게선 과거의 고통을 세상에 밝힌 용기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회에 아직 장벽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여성들이 더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이든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You need to dare to do anything!)" 세계 여성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미국의 글로리아 스타이넘(68·'미즈'편집장)이 지난 2일 서울 평창동 세줄 화랑에서 열린 파티에서 한국 여성에게 던진 메시지다.

#일상에서부터 여자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인맥 구축(네트워킹)'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큰 단체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네트워크가 꼭 크거나 전문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스타이넘은 여성들의 연대가 점심 모임·책읽기 모임 등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직이 있어야 인물이 나온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합니다. 유능한 여성이 있다면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 여성을 찾아가 '당신을 지원하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몇몇 여성들이 모여 능력있는 한 여성을 6년간 꾸준히 지원한 끝에 결국 상원(국회)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을 평등하게 만들어라

"미혼 여성들은 결혼 하기 전에 반드시 결혼에 관련된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자신이 갖는 권리가 무엇인지, 또 책임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타이넘은 '가정 안에서의 남녀평등'을 강조했다. 그는 2년 전 독신 생활을 청산했으나, '물고기에게 자전거가 필요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에겐 남자(남편)가 필요 없다'는 예전 자신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못박았다.

"물론 물고기(여자)가 자전거(남편)를 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이 남편없이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여성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스타이넘에 대한 평가 중 하나는 "'못생기고 매력없는 전투적 페미니스트'와 '멍청한 금발 미녀'의 이분법을 깨뜨린 아름답고 유머 넘치는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시절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여성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나를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며 "하지만 나이가 든 이후 더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으로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온전히 머리와 가슴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니까요."

글=김현경, 사진=김태성 기자

goodj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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