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전한 '팬덤'이 가요계 살린다-더 뛰어라 '오빠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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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팬이 없다면 스타도 존재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대중음악 개혁을 이룰 핵심 주체다. 사실 일부 극성 팬들의 행동 때문에 팬클럽하면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god!"를 외치는 소녀의 어머니가 어쩌면 1969년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공연 때 열광하던 그 소녀가 아닐까. 그러니 청소년들이 스타에게 열광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스타덤이 있다면 팬덤도 있다=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의 이동연 사무차장은 "우리 단체가 라이브공연 활성화 캠페인 등 대중음악 개혁운동을 크게 벌이게 된 것은 일반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내에 본격적인 팬덤(fandom·'스타덤'의 상대적 개념)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된 것은 80년대 조용필의 대규모 '오빠부대'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특히 팬클럽들이 '음악소비자 운동'에 자각하고 행동으로 나선 것은 서태지 팬클럽의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운동을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노래 '시대유감'이 사전심의로 가사가 완전삭제되는 데 강력히 반발, 결국 그 제도의 폐지를 이끌었다. 2000년엔 이재수의 서태지 패러디 앨범(뮤직비디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개혁운동을 벌였다. 서태지팬클럽 중 하나인 '태지 매니아'와 '이승환팬사이트연합''조용필팬사이트연합''god팬사이트연합' 등이 모여 결성한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은 지난해 잡음많던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0대는 댄스가수만 좋아한다?=이런 팬덤운동은 물론 20대 이상의 대학생·직장인·전문직 종사자 팬들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10대 팬이라고 해서 단순히 가수 외모에나 집착하는 철부지들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들도 H.O.T.해체 파문 등을 통해 기획사와 연예인을 따로 보기 시작하면서 10대 특유의 다소 거친 행동을 통해 대형기획사들의 횡포를 비난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EBS 라디오가 특집다큐멘터리 '2002 한국의 대중음악과 10대'를 위해 서울지역 중·고등학생 4백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도 흥미롭다.

<그래픽 참조>

이 프로그램을 맡았던 이협희 PD는 "학생들은 학업 때문에 콘서트를 찾거나 CD를 사기 힘들어 라디오·TV·인터넷 등을 통해 주로 대중음악을 접한다"면서 "그런데 비주얼을 중시하는 TV방송은 댄스가수들 위주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취향도 한쪽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CD를 사거나 콘서트에 가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는 사실은 연예 제작자들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송기철씨는 "침체돼 있는 음반시장을 살리려면 30대나 40대 팬들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기획자나 방송 관계자들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팬들보다 못한 가수는 가라=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수들 자신의 자각이다. 최근 정태춘·윤도현밴드·강산에·이은미 등 라이브 공연을 주로 하는 가수들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나 라이브 활성화 캠페인 등에 참여하는가 하면, 왁스 등 신세대 가수들까지 나서서 불법복사 MP3파일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변화의 작은 조짐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씨는 "가수들의 현실을 잘 모르는 팬들이나 시민단체들의 운동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라면서 "궁극적으로는 한국 대중음악의 풍요로운 문화를 위해, 그리고 가깝게는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가수들 스스로가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수·박지영 기자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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