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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필요인력 육성은 외면 음대 교육 이대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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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해마다 쏟아져나오는 음악대학 졸업생 가운데 국제적인 독주자로 성장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음악관련 업종에 취업하는 인력도 그리 많지 않다. 독주자 양성 위주로 흐르는 현행 교과과정 탓에 정작 음악산업의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졸업생 진로 현황에 따르면 1996년 개교 이후 오케스트라·합창단 등 관련 분야 취업자는 4백75명 중 36명(8%)에 불과했다. 음악을 포기하고 다른 직종에 취업한 경우도 36명이나 됐다. 국내 진학이나 외국 유학(2백45명) 다음으로 프리랜서 음악가(1백53명)가 많았다.

독주자 양성에만 열중

최근'음악입국'을 선언하고 나선 영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음악원 졸업생 중 음악 관련 직종 취업자가 13%, (개인)교수가 8%, 다른 직종으로 바꾼 경우는 무려 74%다. 이는 영국 청소년음악재단(www.youthmusic.org.uk)이 최근 발표한 음악교육 백서 '21세기의 직업 음악가 육성 방안'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백서의 지적 사항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음악산업의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음악교육의 변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음악가와 실기에 대한 개념도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음악가 직업이란 대부분 자영업에다 파트 타임이라고 분석한다. 고용 상태가 불안한 만큼 한 사람의 음악가가 교수·연주자·지휘자·매니저·기획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경우에 따라선 직접 출연료 협상을 벌여야 하고 인간관계를 동원해 연주기회 등 일감을 따내야 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대부분인 21세기형 음악가에겐 연주(작곡·지휘)능력 못지 않게 비즈니스 감각, IT 기술, 커뮤니케이션(자기 PR)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선 뛰어난 말솜씨를 동원해야 한다. 음악산업의 콘텐츠는 무형의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포장 기술이 매주 중요하다. 영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가로 생존하려면 연주 기술(82%)못지 않게 의사소통 기술(62%)이나 행정·비즈니스 기술(32%)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비즈니스 마인드' 가르쳐야

아울러 편곡·음향·영화음악·악기제조·방송음악 등의 분야를 독주 활동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수정돼야 한다. 이들 분야도 넓은 의미의 '실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는 음악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정부가 우선적으로 지원하라고 주문한다.

이같은 수요를 반영하듯 최근 영국 리버풀 대학에 음악산업 MBA과정이 세계 최초로 개설됐다. 또 줄리어드 음대가 최근 재즈 전공을 신설하고 세계 굴지의 매니저들과 선배 음악인의 특강을 통해 무한경쟁의 음악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예술연구소 김춘미 소장은"연주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관련 활동을 실기로 보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며"학제간 교류와 산학협동 과정으로 현장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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