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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움직이는 곳, 그곳이 바로 신선이 노니는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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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02면

‘신선놀음’. 현대인의 꿈이다. 아니,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바람이었다. 불로장생하며 일하지 않고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일은 없을 테니. 그런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신선도(神仙道)나 도가(道家)들의 명당은 대체로 명승지일 것이다. 하나 더 붙이자면 사람들과 부대끼는 데 넌덜머리가 난 이들이 고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어딘가 격리된 곳이 떠오른다.

풍수학자 최창조가 바라본 仙遊洞

신선들의 명당이란 일단 속세의 현실을 떠난다. 그리하여 각성이나 마비의 상태를 맞는다. 이럴 때 강한 해방감과 통렬한 절정을 맛본다. 문제는 이런 상태나 장소를 사람들은 길게 견디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없이 격리되어 산다? 길어야 일주일이 고작이다. 노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그러니 신선놀음이란 그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허상일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이 고단할 때 잠깐이라도 꿈을 꾸며 그런 곳을 찾는다. 조상들은 그런 곳에 선유(仙遊)라는 이름을 붙였다. 선유도, 선유동, 선유담, 선유산, 선유계곡….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군산의 선유도다. 장자도·무녀도·신시도 등으로 이루어진 군산 선유도를 나는 1980년대에 몇 번 가봤다. 특히 수평선 이내(嵐氣) 위로 떠 있는 듯 드러나던 망주봉은 왜 이곳이 신선과 결부되었는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게다가 무당(무녀도)까지. 바로 연상되는 진안 마이산의 기괴함과도 통했다. 술이 취했을 때는 무릉도원을 들어간 어부가 아마 이런 느낌을 가졌을까.

서울이라면 한강 양화대교 옆 선유도가 있다. 이런저런 공사, 특히 양화대교 공사로 본 모습을 잃었지만 사진으로 본 옛 자태는 군산의 선유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풍수 원칙상, 확신은 없다. 그렇다면 본모습을 잃은 지금은 선유도가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신비감은 잃었지만 접근성과 편리함이라는 새로운 신선놀음을 누릴 수 있는 선유도 시민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좋았던 옛날은 있지도 않거니와 있을 수도 없다. 선유도는 지금도 선유도다.

선유동은 물론 이외에도 많다. 두 곳 외에 좀 알려진 문경과 괴산 사이의 선유동이나 경남 고성 영오면에 있는 선유산 역시 비슷한 향취를 갖고 있지만, 모양은 다르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곳들을 세세하게 드러낼 마음은 없다. 나를 비롯해 소위 전문가란 사람들이 어떤 곳이 좋다고 하면 머지않아 그곳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되고 만다. ‘아는 것’이 그 좋은 곳의 불행이 되어 버리는 꼴이다.

사실 풍수에서는 한반도 자체를 신선이라고 보는 견해(仙人練鍛形)도 있다. 신선이 흔히 쓰는 솥 위에 우리나라가 놓여 있다는 뜻이다. 이때 솥의 세 발은 울릉, 제주, 강화도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선유동에 사는 셈이다. 위의 세 섬은 우리의 기둥이니 새삼 우러러볼 필요가 생긴다. 게다가 선유는 신선이 한 군데서 논다는 뜻보다는 여기저기 유람을 다닌다는 뜻이 더 맞다. 선유동을 특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이 땅에 수많은 신선놀음 터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우리나라에서 신선사상은 중국의 도교처럼 체계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다. 풍수, 도참, 정감록, 도가, 불교, 무가, 전통신앙이 골고루 섞여 신선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이능화는 ‘조선 도교사’에서 우리 풍수의 시조인 도선국사를 선가 부류로 본다. 청학집에는 우리나라 신선의 조상인 물계자를 도선이 만나는 대목이 있다. 풍수의 시조가 신선의 조상이 된 셈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종파와 사상들이 융합하여 신선을 만들었으니, 이 나라에 선유동이 많은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선녀도 마찬가지다. 선녀는 옥녀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풍수 형국론에는 무수히 많은 옥녀 관련 명당이 등장한다. 당연히 옥녀는 신선이면서 모성을 상징한다.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평안과 안온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신선은 무릉도원과 궤를 같이한다. 풍수에서 명당은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다. 역시 어머니의 품 안이다.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경남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칠성봉 아래 논골은 정감록이 지적한 3은3점의 피난처 중 하나다. 3은은 고은동·심은동·노은동(논골)이고 3점은 풍점리·먹점리·미점리라고 한다. 예컨대 논골은 6·25나 지리산 빨치산 준동 때 다친 사람 하나 없었던 곳이라 한다. 그 가까이 묵계리에 소위 청학동으로 알려진 곳이 현존한다.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청학동을 일러 “꽉 막힌 골짜기 안에 들어 있는 넓은 별천지로 곡식을 심을 양전옥토가 있는 곳”이라 했다. 논골 역시 이 기준에 잘 맞는다. 노는 게 본분인 신선도 먹는 일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일이다. 내가 좋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좋아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유연한 능선을 가진 투박한 지리산이나 덕유산을 좋아하지만 절벽과 암반이 두드러지는 금강산이나 설악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능선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골짜기를 좋아하는 이도 있다. 이런 주관성이 풍수 명당론, 여기서는 선유동 입지조건을 헷갈리게 하는 본질적인 이유다.

자신이 좋다면 풍광이 명미(明媚)하지 않아도 선유동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천하절승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유동이 될 수 없다. 거지가 멀리서 보기에 그럴 듯하여 동냥을 얻으러 들어가 보니 속은 텅 비었더라는 여주시 북내면 석우리 ‘거지헤탕골’이 사기당한 선유동이라면, 학창시절 가슴 저미는 그리움을 주었던 여학생과 맞닥뜨렸던 첫눈 내리던 북촌 골목길이 내 선유동이다. 그를 만났던 그 골목길에 가면 나는 지금도 그 여학생을 선녀로서 회상한다. 오해 마시라. 선녀와 결혼할 수는 없으니까. 모름지기 그런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선유동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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