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이라크 통합' 미국의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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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일차 목표는 사담 후세인 정권 타도다. 하지만 후세인을 제거한 후 이라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갖가지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그 중 관심을 끄는 것이 요르단과 이라크를 통합하는 계획이다. 민간 안보연구소 스트래트포르가 최근 공개한 이 계획은 '하심가(家)계획'으로 불린다. 이라크를 셋으로 나눠 북부 쿠르드족 지역과 남부 시아파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을 친미국가인 요르단에 합치는 것이다.

요르단과 이라크는 원래 형제국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아랍인들을 이용했다.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대가로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예언자 마호메트의 직계로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통치하던 하심가의 후세인 이븐 알리는 두 아들 파이살·압둘라와 함께 봉기했다. 후세인 군대는 1918년 다마스쿠스에 입성했고, 파이살이 시리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영국이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프랑스가 시리아와 레바논을 차지해 버렸다. 영국은 아랍인들을 달래기 위해 파이살을 이라크왕으로 하고 요르단강 동쪽에 트란스요르단수장국(首長國)을 세워 압둘라를 수장 자리에 앉혔다. 트란스요르단은 28년 트란스요르단왕국이 됐으며, 46년 요르단 하심왕국으로 독립했다. 한편 이라크는 32년 독립했으나 41년 영국에 재점령됐으며, 47년 다시 독립했다. 58년 군사쿠데타로 왕정이 무너진 후 공화국이 됐다.

요르단으로선 하심가의 영화(榮華)를 되살릴 좋은 기회다. 또 산유국이 되고 인구 5백만의 약소국에서 중동의 강자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요르단에 기지 제공을 요구한다.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중동 한복판에 친미적인 요르단-이라크 통합국가를 세움으로써 이란과 시리아 그리고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사우디를 고립시킬 수 있다. 또 요르단-이라크와 쿠르드족 자치구역에 미군이 장기 주둔해 유전지대를 장악, 석유를 낮은 가격으로 안정되게 공급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의 안보가 확실해진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지원해온 이라크로부터 원조가 끊어짐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요소들도 많다. 당장 석유 공급이 중단된다. 요르단은 이라크로부터 하루 10만2천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고 있는데 그중 절반은 공짜다. 정치적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에 기지 제공을 반대하는 이슬람행동전선(IAF) 등 반정부세력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체 인구의 2분의1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 출신들의 움직임도 주의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려면 이같은 불안요소들이 사전에 정리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요르단이 딜레마에 빠졌으며, 압둘라 2세 왕이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선왕(先王) 후세인은 빼어난 지략과 능란한 줄타기 외교로 요르단을 중동의 균형추(均衡錘)와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아들이 아버지만한 역량이 있을지 주목된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chuw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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