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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 고비마다 의혹 폭로… 정형근 탐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 나라에는 국가정보원장이 둘 있다."

한나라당에서 정형근(鄭亨根)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정권의 움직임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갖고 각종 공세를 기획하기 때문이다.그에겐 정권과 현대의 대북(對北)비밀지원 의혹과 관련해 1백여쪽에 달하는 정보기관 기밀자료가 있다고 한다.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 등 권력실세들의 통화내용이 담긴 '도청자료' 묶음도 있다고 한다.

그 자료가 진짜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을 본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거짓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2년간에 걸쳐 많은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조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鄭의원도 "사실 여부는 국정원이 더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료는 국정원의 한 고위간부가 제3자를 통해 건네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여러 요원의 집을 조사했으며, 지금은 밖으로 나가는 요원들 신발의 밑창까지 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기부 1차장 출신인 鄭의원은 정국의 고비 때마다 전면에 나서곤 했다. 1998년 정권 측은 '총풍(銃風)', 즉 "이회창 후보 측이 97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이던 鄭의원은 기소된 청와대 전직 행정관 3명에 대한 고문 의혹, 李후보의 동생 회성(會晟)씨에 대한 국정원 도청의혹을 주장하면서 정권과 맞섰다.

국세청이 99년 중앙일보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면서 "순수한 세무조사"라는 경제논리를 강조하자 鄭의원은 이른바 '언론장악' 문건을 국회에서 폭로했다. 문건에는 "언론장악을 위해 탈세·부당내부거래 등에 대한 관계기관 내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鄭의원의 주장이 늘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언론장악 문건 작성자로 민주당 이강래(李康來)의원을 지목했다. 그러나 李의원은 "사실과 다르다"며 소송을 건 상태다. 鄭의원은 또 "정몽준 의원이 9월 초 북한에 가 김정일과 만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종종 "정권이 정치사찰을 하고 있다. 근거를 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에겐 "무책임한 정치공세의 명수" "공작전문가"라는 비난도 뒤따른다. 습득한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윤리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鄭의원은 안기부(국정원 전신)에서 13년 동안 일했다. 5공(共)초기인 83년 서울지검 검사에서 안기부 대공수사국 법률담당관으로 이동한 뒤 대공수사국장→수사차장보→1국장→1차장을 지냈다. 서경원(徐敬元)·임수경(林琇卿)밀입북 사건, 이선실(李善實)간첩사건 등 대형 공안사건 수사는 모두 그가 지휘했다.

그는 95년 안기부 1차장에서 경질된다. 지방선거 연기론에 대한 여론을 수집하라는 그의 지시가 담긴 문건을 권노갑(權魯甲) 당시 민주당 의원이 폭로했기 때문이다. 88년 서경원 사건 때 북한 공작금 1만달러를 받았다며 김대중(金大中·DJ) 당시 평민당 총재를 불구속 기소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이것이 그의 정치입문 계기가 됐다. 그는 검찰 선배인 김영일(金榮馹)당시 신한국당 정세분석위원장(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부름으로 정세분석 및 정보수집 업무를 하게 된다.

鄭의원은 당시 "DJ와 한번 더 붙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오기와 안기부에서 체득한 정보수집 능력은 이후 DJ를 계속 괴롭히게 된다.

鄭의원의 집과 승용차 안엔 콧수염·눈썹·가발·안경·모자 등 변장도구가 담긴 가방이 있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사람을 산에서, 때론 서울 바깥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므로 중요한 인사를 만날 때, 상대방을 보호해야 할 때는 꼭 변장을 하며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선전화로는 깊은 얘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10여개를 가지고 다닌다. 이중 한달에 2∼3개는 꼭 바꾼다. 그 번호는 부인도 모른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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