預保 부실책임 조사 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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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부실기업들을 상대로 한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책임 규명 조사가 법적인 한계, 해당 기업의 반발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예보는 지난 7월 말까지 3백22개 금융회사의 전·현직 임직원 3천4백여명을 상대로 14조원의 부실책임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예보는 이들 금융회사에 손실을 끼친 부실채무기업 중 부실채무액이 5백억원 이상인 1백41개 기업을 상대로 조사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예보는 지금까지 고합·진도 등 17개 기업만 조사하는 데 그쳤다.

예보는 향후 조사 일정에 대해서도 "부실 채무액이 크고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기업을 우선조사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량은행에서 지원받은 뒤 부실기업이 된 경우에는 예보가 조사 권한이 없는 데다▶대우그룹 같은 덩치 큰 기업의 경우 해당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공공(公共)자금은 사각지대=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97년 11월 이후 지난 5월 말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모두 1백56조3천억원. 여기에는 ▶예보와 자산관리공사 등의 채권발행액 1백2조1천억원▶회수됐다가 중간에 다시 투입된 32조2천억원▶산업은행 등의 공공자금 투입액 22조원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예보의 조사대상은 예보를 통해 약 1백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와 관련된 기업에만 국한돼 있다. 예보 관계자는 "예보법에서 책임 규명의 대상 범위를 좁혀 놓는 바람에 산업은행 등을 통해 투입된 공공자금이나 우량은행의 부실 채무자들은 소송을 피해갈 수 있는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준영 교수는 "공적자금이나 공공자금 투입에 따른 책임 규명은 국민에게 부담과 손실을 끼쳤는지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돼야 한다"며 "우량은행의 부실기업들도 책임을 가려내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딜레마에 빠진 대우그룹 조사=예보는 김우중씨를 비롯한 1백여명의 대우그룹 전·현직 임직원에 대해 9조원 가량의 부실책임을 확정하고 지난달 말 소송을 낼 예정이었으나 대우 측의 반발로 소송을 계속 미루고 있다.

현행 규정상 대우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소송의 주체는 법인인 대우지만 사실상 이를 장악한 임원들이 자신과 전직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예보 관계자는 "과거 대우의 부실화에 책임이 있으면서 현직에 남아 있는 몇몇 임원들이 소송에 반발하고 있어 소송이 어렵다"고 말했다. 예보는 이에 따라 최근 예보법을 개정해 '법인이 소송을 내지 않으면 채권은행이 대신해 채권자 대위권(代位權)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하려고 했으나 판례도 없고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에 따라 포기한 상태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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