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후보의 '발가락 양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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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盧武鉉)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발가락 양말'을 착용한다. 발가락이 하나씩 들어가게 돼 있는 이 양말은 바람이 잘 통해 무좀 방지도 되는 등 여간 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눈에 익숙하지는 않아서 "징그럽다"며 질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정장 차림에 이런 양말을 착용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盧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된 후에도 이 양말을 고집한다. 주위에서 모양 사납다고 보통 양말로 바꾸기를 권했지만 막무가내다. 보다 못한 盧후보 정치특보인 천정배 의원이 자기 부인을 盧후보 부인에게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조치를 당부했으나 여전하다. 바꿀 이유가 없다며 발가락 양말을 고수하는 것이다.

盧후보의 고래심줄 고집은 이인제 의원 등과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측근들이 상대의 집을 방문해 협력을 요청해보라고 진언했지만 허사였다. 당 화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남길 수 있으니 시도하라는 권유를,마음에 없는 일을 왜 하느냐며 뿌리쳤다. 얼마 전부터 출입기자들을 집으로 초청하고,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긴 했으나 마지못해 할 뿐, 고집의 기본이 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盧후보가 '마이 웨이'를 외치고 나섰다. 정몽준 후보를 따라갈 사람은 가라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끝낸 이번 주가 대세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터인데,지난주 선대위 출범식 참석의원은 소속의원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반(反)이회창 연합전선의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종국에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단언한다.

당내 중도그룹의 한광옥 전 대표는 당선 가능성 못지 않게 盧후보의 좌파 성향과 스타일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鄭후보의 거품이 빠질 경우에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반노(反盧)의원들이 주저앉기를 꺼릴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경선 당시 원체 경황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뭔가에 홀렸던 모양"이라며 盧후보를 멀리 하는 의원들도 상당수다. 김영배 전 대표 등은 8·8 재·보선에서 운동권 출신들의 득표율이 특히 저조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로 반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盧후보의 세 확보 관건은 지지율과 더불어 이념 문제인데 이게 간단치 않다. 盧후보가 그간 보여준 급진적 언행은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다. 그의 혜화동 자택 거실 한쪽 벽 책꽂이를 가득 메운 각종 운동권 서적들이 암시하듯 신념의 분출이다. 그는 8월 재·보선 때도 명분을 강조하며 득표력이 떨어지는 운동권 출신 공천을 밀어붙였다. 千특보가 "이기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권했음에도 "그래선 대통령이 돼봤자 소용없다"고 버티는 盧후보다.

盧후보가 자신의 노선을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후보자리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라도 盧후보를 지켜야 한다고 韓 전 대표는 말한다. 다만 "지지율이 확연히 떨어지면 달라질 소지가 없지 않다"고 여운을 남긴다. 盧후보의 훌훌 털어버리는'낭만적' 성격이 작동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역시 "盧후보가 홀몸일 때와는 달리 추종자들이 많아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이 석달도 안남았지만 대진표를 짜려면 더 기다려야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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