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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중앙신인문학상]나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텔레비전에서 본, 눈보라를 뚫고 캠프를 옮겨가며 산을 오르는 히말라야등반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저씨들은 산 정상에 깃발을 꽂고 감격스러워하지만 우리는 꽂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일년에 한 번 꼴로 캠프를 옮긴다. 우리의 잦은 이사가 엄마의 머리 속에 든 나비 때문인지 외삼촌이 엄마에게 뜯어 가는 돈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의 새 집은 늘 먼저 집보다 높았고 개똥이 많은 골목 어디쯤에 있다.

겨울 방학이 가까워진다. 오늘도 나는 개똥이 많은 골목을 지나 학교로 간다. 땅바닥을 안 보고 싶지만 그러다가 언제 개똥을 밟을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골목 안의 개똥 하나하나를 다 살피며 가야 한다. 외할머니에게 주사를 놓을 때마다 바늘자국이 없는 곳을 고르기 위해 할머니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야 하는 것처럼 기분 나쁜 일이다. 골목길을 빠져나와서야 크게 숨을 쉬고 나는 언덕 아래로 구르듯이 뛰어간다. 목에 매단 열쇠가 딸랑거리며 소리를 낸다. 지난번에 살던 집에서는 열쇠를 잃어버려 밤늦게까지 밖에서 엄마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열쇠를 줄에 매달아 내 목에 걸어 주었다. 이제는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은 없다. 그 일로 엄마가 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밤늦게까지 문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날, 엄마는 엄청 울었다. 나를 안고 운 것이 아니라 소주병을 붙들고 울었다. 엄마 입으로 들어간 소주는 모두 눈물이 되어 나왔다. 김정호 아저씨랑 함께 울었다. 엄마는 술을 마실 때면 늘 김정호 아저씨의 노래를 듣는다. 엄마 나이 열여덟이던 해 가을에 죽은 그 가수를 엄마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을.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임인데.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엄마는 물처럼 술을 마셨다. 엄마 한 잔, 김정호 아저씨 한 잔, 엄마 또 한 잔, 하얀 나비 한 잔. 돌아누워 자는 척 하며 나는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노래 때문인지 엄마의 눈물 때문인지 나도 눈물이 났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귓속으로 들어가 귓속이 간지러웠다. 그래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우리 반에는 나처럼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들이 몇 있다. 그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그랬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권총 모양의 열쇠를 목에 걸고 있는 아이의 집은 옥탑방이다. 엄마 아빠가 야근하는 날이면 바람에 샤시 문이 덜컹거려 무섭기도 하지만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좋다. 저녁 무렵,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지나가는 전철을 볼 때마다 아이는 어디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꽃을 좋아하는 아이의 엄마가 옥상 가장자리마다 주워온 스티로폼 상자를 놓고 그곳에 씨를 뿌린다. 과꽃이랑 채송화, 맨드라미가 피고 진다. 아이의 엄마는 잦은 야근 때문에 꽃을 보지 못한 날이 더 많다. 일년에 한 번씩은 구청에서 단속을 나오는 무허가 옥탑방. 단속이 시작되면 집주인은 벽을 깨고 옥탑방 옆에 있는 노란 물탱크를 방안으로 들이민다. 아이네 식구는 며칠동안 물탱크 옆에서 불편한 잠을 잔다. 구청에서 나온 공무원이 사진을 몇 장 찍고 간 후에야 물탱크는 밖으로 나온다.

골목 끝, 지하 작은 방에서 불빛 하나가 켜진다. 은색 열쇠를 목에 건 아이의 집이다. 창문이 땅바닥에 붙어 있어 멀리서 보면 불빛은 앉은뱅이 꽃처럼 보인다. 집안의 풍경도 꽃 속 같았으면. 하지만 지난여름 물에 잠겼던 집안은 아직도 눅눅하다. 장판 밑에 깐 신문지는 늘 젖어있고 한쪽 귀퉁이에서 피기 시작한 곰팡이가 온 방으로 번지고 있다. 아이의 마른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아이의 얼굴은 아이의 목에 걸린 열쇠처럼 창백하다. 물에 젖은 장롱이랑 방문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늘 푸석푸석한 아이 엄마의 얼굴처럼 방안의 물건들이 조금씩 부풀어 있고 얼룩져 있다.

내가 아이들의 열쇠구멍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아이의 집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반 담임선생님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 전학 오던 날, 나는 그것을 알아챘다. 선생님은 교실 문 앞에서 쭈뼛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누굴 찾아왔니? 하고 물으셨다. 언니나 오빠에게 볼 일이 있어 온 하급생으로 아셨던 것이다. 하기야 내 키는 4학년 치고 너무 작은 키다. 나는 어디서든 너무 작아서 눈에 띈다.

"전학 왔는데요?"

"전학?"

나는 엄마가 아침에 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전날 교무실에서 받은 종이에는 내가 지정 받은 교실호수와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너 혼자 왔니?"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선생님의 눈길이 내 목에 걸려있는 열쇠에 와서 꽂혔다.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열쇠를 본 순간 선생님은 그 구멍 속으로 우리 집 방 안을 모두 들여다 본 것이다. 방문 옆에 놓인 버캐 낀 요강도 보셨을까. 신체검사 날 손톱 밑의 새까만 때를 들켰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 자리는 덩치가 큰 아이의 뒤쪽이다. 나는 아이의 뒤에 숨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학 온 날을 빼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처음 며칠은 내 키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너무 작아서 그들 눈에 띄지 않는다. 나랑 친구가 되어줄 아이는 없다. 아이들에게는 모두 단짝이 있고 새 친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쉬는 시간에도 꽃만 그리고 앉아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 방학이 시작된다. 방학이 되면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카드 만들기에 정신이 없다.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나는 큰 아이 뒤에 숨어 머리만 긁고 있다. 언제부턴가 자꾸만 머리 속이 가렵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가만 손끝으로 머리 속을 더듬어 본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빨간 색종이로 산타할아버지 모양을 접던 아이가 자기 집 마루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금색 빤짝이 풀을 손에 쥔 아이도 끼어든다.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아이들의 집 마루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를 상상해본다. 나뭇가지마다 눈처럼 얹힌 하얀 솜, 금색 종과 여러 색깔의 방울들. 산타클로스의 썰매가 그려진 빨간색 카드. 사실 나는 한 번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나보다 더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가진 아이는 없을 거다. 밤늦게 엄마를 기다리며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 전체가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빽빽한 붉은 십자가와 가로등, 간판의 불빛들. 밤마다 엄마는 크리스마스트리 숲을 지나 내게로 온다. 손님들이 남긴 술을 한 잔 한 잔 마셔 비틀비틀한 걸음으로, 하얀 나비를 부르며. 엄마의 하얀 나비는 겨울이 되어도 죽지 않는다.

점심 때가 다 되어가지만 엄마는 아직도 자고 있다. 오늘은 둘째 주 일요일이다. 엄마가 일하러 다니는 식당은 둘째, 넷째 주에는 쉰다. 이렇게 엄마가 쉬는 일요일이 나는 좋다. 나는 조용조용 아침 설거지를 하고, 대문간에 있는 공동화장실에 할머니 요강을 비우고 연탄불을 간다. 할머니는 그 사이에 몇 번이나 니 에미 년 깨워라,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할머니에게 길게 눈을 흘긴다. 엄마는 잠잘 때 빼고는 집에 붙어있질 못한다. 외할머니는 내 마음도 모르고 자꾸만 성화다. 결국 나는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또 그 방법을 쓰고 만다.

"할머니 엊저녁에도 사탕 먹은 것 엄마한테 말 해버린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사탕 먹은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되면 그때는 나도 죽고 할머니도 죽는다. 보건소에서 할머니의 약을 탈 때마다 의사는 단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왜 안 되는지 모르지만 의사가 안 된다고 한 건 엄마도 안 된다.

"육시랄 년!"

한마디 내뱉고 할머니는 잘 닫혀 지지 않는 입을 이죽거린다. 외할머니는 언제부턴가 은근히 엄마를 무서워한다. 외할아버지를 닮은 엄마는 화가 나면 뭐든지 집어 던지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자기가 엄마 같은 딸을 낳은 것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라고 한다.

"너도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저런 에미년을 만난 거여."

눈곱이 잔뜩 묻은 눈을 가늘게 뜨며 외할머니는 말한다. 외할머니의 비뚤어진 입에서 나온 말대로라면 엄마는 외할머니와 내가 전생에서 지은 죄 때문에 우리를 벌주러 온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좋다. 내게 와주어서 좋다. 엄마는 나에게 아주 커다란 선물이다. 가끔은, 엄마에게 나도 선물이 되는지 궁금하다.

이젠 외할머니도 잠이 들었다.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엎드린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절대로 나란히 눕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잠이 들어도 사이가 좋지 않다. 외할머니의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침이 베개에 스며든다. 외할머니의 얼굴은 잠 잘 때도 비뚤어져 있다. 그런 외할머니의 얼굴을 오래 보고 있으면 자꾸만 내 얼굴도 비뚤어지는 것 같다. 내 입에서도 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훔치곤 한다. 나는 엄마 쪽으로 다가간다. 조심스럽게 엄마의 머릿속에 코를 묻고 엄마 냄새를 맡는다. 엄마의 머리에서 숯불 냄새가 난다. 숯불 속에서 고깃점이 익어가고 마늘이 탄다. 갈비집 주방에서 일하는 엄마한테서는 늘 매캐한 숯불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엄마의 머리카락과 손톱 밑 그리고 엄마의 속옷에까지 배어있다. 하루 종일 지글거리며 타는 고기냄새를 맡다보면 엄마는 미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나비를 키우는 사람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책을 펼쳐든다. 엄마를 오래오래 재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잠들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며칠이고 엄마를 재울 수도 있다. 엄마 곁에 엎드려 하루 종일 연필로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된다. 엄마는 종이 위에서 연필이 내는 소리를 좋아한다. 사각사각. 엄마는 그 소리가 꼭 누에가 뽕잎을 갉아대는 소리 같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누에 키우는 철만 되면 늬 외할머니 손버릇이 사라졌어. 누에고치는 바로 돈이 됐으니까. 그러니 외할아버지랑 싸울 일도 없었지. 채반에서는 누에가 뽕잎을 먹고, 늬 외할머니는 또 연한 뽕잎을 따러가고. 채반이 가득 찬 방에 누워 있으면 풀밭 위에 있는 것 같았어. 자꾸만 잠이 쏟아졌지.

내가 소리를 만들어내는 동안 엄마는 번데기처럼 오그리고 고른 숨을 내쉰다. 엄마의 잠 속에서 누에는 뽕잎을 갉아먹고, 누렇게 살이 오르고, 입에서 실을 뽑아낸다. 흰 고치 속으로 몸을 숨긴 누에처럼 어쩌면 엄마도 어디론가 꼭 꼭 숨어버리고 싶을지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 희고 단단한 집을 지어주고 싶다. 외할머니나 외삼촌이 열려고 해도 절대로 열리지 않는 단단한 집을.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이사이 엄마 머리에 얼굴을 묻고 엄마 냄새를 맡는다.

'엄마''외할머니''삼촌' 그리고 '아빠'. 꽃을 그리고 난 여백에 글씨를 써나간다. 까만 글씨가 이제 막 알에서 깬 새끼누에 같다. 엄마, 아빠, 외할머니, 삼촌. 나는 '외할머니'와 '삼촌'을 지우고 그 위에 내 이름을 크게 써넣는다. 그리고 낭미충. 나는 엄마의 머리에 가만히 귀를 갖다댄다. 숯불냄새 저편으로 무엇인가 사그락대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나는 더 바짝 귀를 갖다댄다.

어렸을 적, 엄마는 외할머니가 훔쳐온 돼지고기를 날로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술 취한 외할아버지는 잠들었고 외할머니는 또 도둑질하러 나가고 없는 밤이었다. 엄마와 삼촌은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듬성듬성 털이 있는 생비곗살을 썰어 소금에 찍어 먹었다. 얼마만큼이나 먹었을까. 맞은편에 수그리고 앉아 먹던 외삼촌이 입술에 묻은 피를 쓰윽 닦을 때에야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날비곗살 깊숙이 박혀 있던 기생충이 엄마의 핏줄 속으로 흘러들었다. 외할머니가 외삼촌만 데리고 신작로로 달아나고, 술만 마시면 무엇이든 던지는 외할아버지가 저수지에 자신의 몸을 던져버리고, 김정호가 죽고. 그러는 사이에 엄마 머릿속에 있는 기생충은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알에서 머리와 꼬리가 생기고 다시 알을 낳고. 한살이를 마친 낭미충은 엄마 머릿속에 누에처럼 집을 짓고 죽는다. 엄마의 머릿속은 낭미충의 집이 되고 무덤이 된다.

벌써 공책이 다 되어간다. 새 공책을 꺼내려 일어서던 나는 텔레비전 위에 놓인 달력을 집어 든다. 달력을 앞쪽으로 넘겨본다. 달력에는 드문드문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내가 표시해 둔 것이다. 마지막 동그라미는 두 달 전쯤에 표시되어 있다. 엄마 머릿속에 사는 검은 나비가 움직인 날이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불쑥 나타나 돈을 뜯어 가는 외삼촌처럼 엄마 머릿속의 검은 나비도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 나는 얼른 새 공책을 꺼내 들고 꽃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 머리 속의 나비를 불러내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공책 가득 넓은 꽃잎을 그리고 암술 수술을 그려 넣는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을 그리고 싶다. 긴 꿀주머니가 달린 꽃, 꽃대궁에 꿀이 가득 찬 꽃. 마법사가 쉬지 않고 외우는 주문처럼 나는 쉬지 않고 꽃을 그린다. 어느새 공책은 향기 나는 꽃밭이 된다. 개똥 위에도 할머니 요강 속에도 꽃이 내려앉는다. 꽃밭은 넓은 정원이 되고 마을이 되고 온 세상이 된다. 그러다가 꽃향기에 취해서 일까. 슬슬 졸리기 시작한다. 나는 공책을 엄마 머리맡에 활짝 펼쳐놓고 잠이 든다. 꿈속에서도 세상은 온통 꽃 천지다. 끝없이 펼쳐진 꽃길 사이로 엄마랑 내가 걸어가고 있다. 길도 꽃도 끝없이 이어진다. 그 꽃길 한 가운데서 갑자기 엄마가 머리를 싸쥐며 쓰러진다. 엄마 머리 속에서 검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나비가 팔랑거릴 때마다 검은 가루가 떨어져 내린다. 길이 지워지고 꽃이 사라진다. 엄마와 내가 검은 가루에 파묻힌다. 꿈이 사라진 자리에 외할머니의 머리 긁는 소리가 들어찬다. 외할머니는 상처가 날 정도로 머리를 긁어댄다. 손톱 밑으로 피 묻은 때가 낀다. 나도 잠이 든 채로 머리를 긁기 시작한다.

와! 눈이다. 한 아이가 외치는 소리에 교실 안은 눈 내리는 바깥보다 더 수선스러워진다.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몇몇은 슬금슬금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창가로 간다. 칠판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던 선생님도 그대로 멈추어서 창 밖을 바라본다. 호랑이를 닮은 지도는 등줄기 중간쯤에서 멈추어졌다. 흰 나비 떼처럼 몰려오는 눈이 땅 위에서 이리저리 흩어진다. 사실 나는 조금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공책 한 귀퉁이에 꽃을 그리다가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았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순간 엄마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오늘도 어김없이 술을 마실 것이다. 지나가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기라도 하면 몇 번이고 창 밖을 내다보면서.

엄마랑 같은 공장에 다니던 아빠가 엄마의 방 창문아래에 서서 밤을 지새고 했던 것은 김정호 아저씨가 죽던 그 해 겨울이라고 했다. 창문을 두드려볼까, 망설이면서 속절없이 발밑의 그림자만 지우고 또 지우던 밤이 이어졌다. 창문이 열리지 않아도 아빠는 엄마의 방 창문 아래에 서면 행복했다고 한다. 만약 그 날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아빠는 다른 날처럼 발밑의 그림자 위에 애먼 동그라미만 그리다 돌아갔을 것이다. 똑. 똑. 똑. 첫눈이 창문을 두드리게 했다. 하얀 나비를 김정호 만큼 잘 부르던 사람. 공장 야유회 때마다 그 노래를 불러 가슴 젖게 만들던 남자가 푸지게 내리는 눈 속에 서 있었다. 누래진 옥양목 커튼 뒤에서 엄마의 가슴이 뛰었다.

첫눈 내리던 날 엄마에게 왔던 아빠는 커다란 삼나무에 깔려서 스물넷에 죽었다. 염색공장에서 버는 돈으로는 엄마의 병을 고칠 수 없어 아빠는 아는 사람을 따라 벌목 일을 시작했다. 아빠한테서는 늘 나무 냄새랑 풀 냄새가 났다고 한다. 엄마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엄마 몸에 송진 냄새며 풀 냄새를 묻혀놓고 산으로 간 아빠는 그 냄새가 희미해질 즈음 돌아오곤 했다. 돌아온 아빠는 엄마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우주 전체가 쓰러지는 것 같아. 그래서 오래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말한 아빠는 엄마 몸속에 나무를 심듯 나를 심어놓고 간 뒤 죽어서 산을 내려왔다. 나는 아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빠가 밟고 지나가는 수풀소리며 톱밥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선생님은 우리나라 지도를 다 그리고 그 안에 산맥을 채워 넣고 있다. 마식령, 낭림, 마천령, 태백, 차령… 산맥은 호랑이 몸속에 박힌 단단한 뼈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이제 눈 따위는 잊어버리고 지도를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칠판에 그려진 지도를 한참동안 바라본다. 벼락처럼 쓰러지는 나무에 아빠의 몸이 꺾인 산은 어디쯤일까. 눈 내리는 숲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공책에 지도대신 마저 그리지 못한 꽃을 그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내 짝꿍이 소리를 지른다. 지도에도 없는 산맥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한 목소리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내 짝꿍에게로 향한다.

"벌레예요. 선생님, 얘 머리에 벌레 있어요."

짝꿍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내가 짝꿍의 이름을 알지 못하듯 짝꿍도 내 이름을 모른다. 잠깐 멈칫하던 선생님이 티슈 한 장을 뽑아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머리 속이 아득해진다. 나는 꼼짝 할 수가 없다. 선생님 손끝에서 흔들리는 티슈만 눈에 가득 들어온다.

"엄마가 많이 바쁘시니?"

화장지에 싼 이를 슬리퍼로 뭉개면서 선생님이 물으신다. 톡. 삼나무에 꺾인 아빠의 몸에서도 저런 소리가 났을까. 선생님은 내 목에 걸린 열쇠를 힐끗 쳐다보고는 뒤돌아선다. 이제 아이들은 내 작은 키 대신 머리에서 나온 이로만 나를 기억할 것이다. 투두 둑, 공책에 그려진 꽃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꽃잎이 진해진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지붕 위에, 허물어진 담벼락에 그리고 골목길 여기저기 있는 개똥 위에도 내린다. 개똥을 보지 않고도 언덕길을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멀리 엄마와 나의 집이 보인다.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방문 앞에서 나는 습관처럼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댄다.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정말 할머니가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나빠진 기분이 조금 나아질 것 같다. 나는 죽은 할머니가 다시 살아날까봐 가만가만 열쇠를 돌린다. 문틈 사이로 오줌 냄새며 아침에 차려놓고 간 반찬 냄새가 새어나온다. 어쩌면 그 속에 할머니의 몸이 썩는 냄새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열고도 나의 기대가 깨질까봐 방 안을 보지 못한다. 고개를 숙인 채 문고리만 잡고 서 있다.

"문 닫아, 이년아. 바람들어와."

할머니는 틀니에 들러붙은 껌을 떼느라 정신이 없다.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틀니를 끼고 성한 손 하나로 떼어낸다. 찬장에 숨겨 놓고 간 껌을 또 용케도 찾아냈다. 나는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할머니를 노려본다. 아침에 내가 빗겨 주고 간 머리는 다 헝클어져 있고, 비녀대신 꽂혀 있던 플라스틱 젓가락은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할머니는 늘 도둑질을 했어도 늘 가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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