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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제주 CEO 콘퍼런스' 참석자들 좌담>CEO는 家臣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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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투명성과 윤리경영은 그동안 CEO(최고경영자)들의 화두였다.엔론 사태가 난 후 CEO들의 도덕성이 비판을 받으면서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지난 13∼15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한국CEO포럼이 주최한 '제1회 제주 CEO콘퍼런스'에 참석한 경영자들도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포럼의 공동대표인 강석진 GE코리아 회장은 "CEO는 가신(家臣)역할을 해선 안되며, 가신이란 말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김일섭 이화여대 부총장은 "2000년말 과거의 분식회계를 한번에 정리하는 통과의례를 치렀듯이, CEO들의 과거 잘못도 고해성사 후 사면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한국CEO포럼도 "모든 주주의 권리와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며,경영투명성을 보장한다"는 윤리강령을 채택한 바 있다.

중앙일보는 이 포럼에 참석한 주요 CEO들과 '경영투명성과 CEO의 역할'이란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13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저녁 9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토론자(가나다 순)=김주성 코오롱 구조조정본부장, 김형순 로커스 사장, 신재철 한국IBM 사장, 오찬석 영화회계법인 대표,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사회)

▶서윤석 학장=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사외이사제·감사위원회등 여러 제도가 많이 도입됐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외이사엔 대주주의 측근들이 많고, "적을 만들지 말라"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성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전광우 부회장=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이 투명성과 책임경영이다. 그후 제도는 많이 개선됐지만 현장이 그렇게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제도가 하드웨어라면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임직원들의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사외이사들의 자격이 높아져야 하고,정확한 임무도 주어져야 한다.

▶오찬석 대표=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가령 미국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7위인 엔론 같은 거대기업도 감사위원 6명 중 3명이 자격요건 미달이었다. 그러니 분식회계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고, 충격은 그만큼 컸다.

▶김주성 본부장=외환위기 이후 투명하지 않은 기업들이 많이 망했다. 실제로 경영이 잘 안되는 기업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 그게 기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혼자만 투명하면 손해 보는 요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투자자·종업원·거래선등이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어 기업이 부정을 저지르기 쉽지 않다.공시 한번 잘못해도 큰일난다.'속이면 손해본다'는 인식도 많이 확산됐다.

▶신재철 사장=외환위기 전에는 IBM과 한국기업의 경영시스템이 크게 달랐지만 지금은 거의 일치한다.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이 주주 및 시장중시경영을 하고 있을 정도로 굉장히 빨리 변했다.

▶김형순 사장=소프트웨어가 변하려면 대주주와 CEO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다. CEO가 투명경영을 하도록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서 학장=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는 우리의 문화나 전통과도 관계가 있다.가령 우리는 전통적으로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는 합리와 실리를 중시한다.이때문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 같다.40대 은행장 등 선발은 능력 위주로 하지만 퇴출은 능력이 아니라 나이 순이다.

▶전 부회장=중국은 자본주의적 사회주의 국가고, 우리는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라고 한다. 그만큼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애로가 많다. 그렇더라도 CEO는 투명·합리적인 경영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조직원들의 시장성(마케터빌리티)을 높여야 한다. (직원들과)대화도 많이 해야 한다. 21세기 CEO가 갖춰야할 요건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라고 하지 않는가.

▶김 사장=서구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합리적인 교육을 받았다.이런 사람들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경쟁했을 때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결국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되 그 위에 우리의 고유 문화를 얹은 독특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월드컵 때 봤듯이 우리는 엄청난 열정을 가진 민족이다.이런 열정을 끌어내려면 결국 종업원들과 대화하고,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신 사장=유능한 CEO라면 자신이 가진 시간의 30%는 종업원들에게 쏟아야 한다.

▶김 본부장=글로벌 스탠더드는 따지고 보면 아메리칸 스탠더드다. 미국이 매우 강한 나라인 만큼 아메리칸 스탠더드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국기준과 완전히 매치될 수 없는 우리만의 본질적인 것들이 있다. 변화할 것은 빨리 변화시키면서도 우리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 이것을 적용해야 한다. 요즘 월급만 많이 준다고 좋아할 종업원이 없다. 성취감과 자부심,발전 가능성에 대해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서 학장=글로벌 스탠더드에 우리 고유의 특성이 가미돼야 한다는 의견인 것 같다.이 점에서 '신바람'이 중요하고,이는 장기 비전이 제공됐을 때 극대화된다.또 CEO들이 주주가치, 특히 대주주의 가치를 너무 강조하는 것 같다.

▶전 부회장=비전을 제공하는 것은 CEO의 주요한 역할이다. 비전이 없을 때 사고가 터진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단점 중의 하나가 단기적 경영성과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인데 엔론사태가 터진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주주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영투명성이다. 그동안 비합리적 노조운동이 뿌리내렸던 데는 경영진의 불투명성에 기인한 바가 컸다.

▶김 본부장='소프트 터치'가 중요하다.CEO들은 너무 원칙만 강조해선 안되며,구성원들의 정서를 잘 판단해야 한다.자식들을 교육할 때도 "저녁 9시까지 와라,그렇지 않으면 종아리 한대다"라는 원칙을 정했지만,갑작스런 사고 때문에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 않은가.

▶신 사장=종업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기술력도 키우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 노조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 노조 역시 원칙과 정서를 구분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서 학장=CEO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국가 지배구조가 제대로 안돼 있는데 기업과 CEO에게 사회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만큼 CEO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진행=김영욱 전문기자, 정리=김준현 기자, 사진=한국CEO포럼 제공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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