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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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왜 세계인들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선호할까. 사랑하는 사람, 그리워 하는 사람,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을 마음에 그리며 레퀴엠의 선율에 눈물 흘린다. 시간의 흐름을 안타까워한다. 가을의 화음이 우리들의 추억에 더욱 극적인 효과를 준다.

9·11 테러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가 전세계 1백여개국에서 잇따라 열리면서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진혼곡)이 연주됐다. 가장 해가 먼저 뜨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부터 남극 빙하에 둘러싸인 연구시설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런던·파리, 그리고 워싱턴과 뉴욕의 테러 현장에 이르기까지 레퀴엠이 릴레이로 울려퍼졌다. 시민의 합창으로, 또는 경찰과 군악대의 연주로 세계인의 가슴에 파고든 이 음악은 우울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그라운드 제로'는 레퀴엠이 연주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귀함이 넘쳐흐른다. 유가족들이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우리들의 가슴에도 그 감정들이 전달된다.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몇달 전에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받았다. 그는 이 음악에 죽음에 대한 탐구를 담았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인간이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느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병이 악화되어 오선지에 창작의 날개를 펴다 숨을 거뒀다. 미완성 상태에서 끝난 레퀴엠이 신비함을 더한 것은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이 곡은 나를 위해 쓴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 흘렸다는 대목에서다. 모차르트의 뜨거운 정열과 강한 집념이 녹아 들어간 레퀴엠은 그의 제자인 쥐스파이어에 의해 완성됐다.

레퀴엠은 죽은 자의 혼을 달래는 가톨릭 교회 등의 예식용 음악으로 자주 연주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해마다 성인의 날에 황실 예배당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정기적으로 연주돼 청중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슬픔과 기쁨의 합창이기도 했다. 삶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었다.

우리들이 어느 추도식이나 장례식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스페인 민요 '새처럼 자유롭게'도 떠나가는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이번 수해로 내 가족과 이웃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에게도 이 음악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아직 시신도 못찾은 일부 수재민들의 영혼이 새처럼 자유롭게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레퀴엠을 들려주자.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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