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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던 폴란드 경제 개혁 고삐죄니 살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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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금 우리는 과감히 시장경제로 이행해야 할 역사적 시점에 있습니다."

1989년 9월 8일 자유노조를 주축으로 구성된 폴란드 새 내각의 레세크 발체로비츠 재무장관 지명자는 의회 연설에서 '공산주의의 종말'을 선언했다. 각료 내정자 23명 중 공산당 소속은 5명. 각료 내정자들은 이날 "소련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것이며 공산주의 방식의 경제정책에서 조속히 탈피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폴란드는 50년 만에 독립을 이룸은 물론 세계 냉전 종식의 선봉에 섰다. 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후 급물살을 탄 공산주의 체제의 변화는 폴란드의 선언을 계기로 더욱 빨라졌다. 두달 뒤인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2월 25일에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크 대통령 부부가 처형당했다. 그 후 1년이 안돼 공산주의 국가의 맏형인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는 사회적 안정을 이루지 못했다. 경제성장률이 물가상승률을 밑돌아 국민은 높은 물가와 낮은 임금에 시달렸다.

80년 전국적으로 파업이 번졌고 노조 중심의 자유연대(Solidarity)가 조직됐으며, 소련과 공산주의에 맞선 이들은 10년째 되던 해 마침내 승리했다.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초기에는 시련을 겪었다.연간 물가상승률은 2백%를,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0%를 넘나들었다.

결국 바웬사가 마조비에츠키 총리를 축출하고 대통령에 당선돼 개혁 작업을 가속화한 91년 말부터 경제가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폴란드가 탈공산주의를 선언한 지 10여년이 지난 2002년, 마침내 공산주의 체제는 종식을 고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거의 유일하게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북한이 지난 7월 1일 개혁과 개방을 주창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식 중앙통제·계획경제로는 경제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쌀배급제를 폐지하고, 물가와 급여 인상을 인정했다. 환율 현실화와 화폐개혁에 이르기까지 개혁의 대상과 폭이 넓어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17일로 잡힌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은 북한이 개혁과 동시에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 두 나라의 개혁·개방정책에 관심을 기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더 이상 폐쇄적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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