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주 추자도 굴비 “영광굴비 비켜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아이고, 한여름에도 정신이 없어요. 올 추석에도 철야 근무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북서쪽으로 53㎞ 떨어진 추자도의 신양항 포구 근처, 굴비 가공업체인 추자청정수산 작업장. 7~8명의 여성이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소금 간이 된 참조기가 작업대에 올려지자마자 재빨리 끈으로 엮는다. 이 업체에서 일하는 조승희(38)씨는 “한 달 20여 일을 일하고 200만원을 손에 쥐게 되니 섬에선 괜찮은 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업체는 지난해 4만여 상자(상자당 10~13㎏)의 굴비를 팔아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50억원이 목표다. 오영수 추자청정수산 사장은 “최근 1~2년 주문이 폭주해 어떨 땐 어리둥절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제주 추자도 주민들이 신양항 포구 근처의 작업장에서 굴비 엮는 작업을 끝낸 뒤 굴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올해 추자도 굴비의 매출액은 300억원을 바라본다. [제주시 제공]

추자도가 굴비로 히트를 치면서 “추자도에서는 개들도 1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조기 잡이’에 머물지 않고 과감히 ‘조기 브랜드 만들기’에 도전한 결과다.

추자도는 1200여 가구, 2500여 명이 사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161척의 어선이 조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근해유자망어업에 나서는 50척의 어선이 이 섬의 주력이다. 지난해 유자망어선이 잡은 참조기는 1만1800t. 국내 전체 조기 어획량의 30%를 차지한다.

3년 전만 해도 잡은 조기를 거의 전량 전남 영광 등지로 팔았다. 그러나 2007년 초 제주시가 ‘명품 굴비 브랜드화 사업’의 적지로 추자도를 선정해 지원하면서 바뀌었다. 변변한 작업장이 없는 형편을 감안해 16억원을 들여 추자도에 굴비 가공공장을 만들었다. 1~2개 업체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지금은 가공업체가 16곳으로 늘었다.

2007년에는 굴비 가공품 455t을 팔아 매출액 72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1250t을 팔아 210억원을 벌었다. 추자도의 지역총생산액도 2007년 513억원에서 지난해 77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정호 추자도수협 조합장은 “최근엔 영광 등지에서 추자도 굴비를 비방하는 소문이 들려와 우리가 성장한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추자도의 성공은 수협·어민이 합심한 결과였다. 다른 지방에 조기를 넘기고 제때 돈을 받지 못해 빚더미에 앉는 어민들이 과거 비일비재했다. 속앓이를 하던 어민들은 수협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2004년 초 추자수협은 굴비 가공 시범사업에 나섰다. 원재료는 자신 있었지만 기술은 부족했다. 수협은 주민들을 모아 영광의 가공업체에 견학을 주선했고, 1~2개월씩 영광·법성포 가공업체의 유명 간잡이를 초청해 기술 지도도 받았다. 이중환 추자수협 상무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때는 자존심 다 버리고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수협과 어민들은 제주시를 찾아갔다. “굴비로 추자도를 특성화해 보겠다는 주민 얘기를 듣고 ‘바로 이거다’란 생각에 무릎을 쳤죠.” 조동근 제주시 해양수산과장은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주민들은 추자도 굴비를 널리 알리기 위해 ‘굴비축제’ 아이디어를 냈다. 조기 어획 금지기(4~8월)로 어한기인 여름철에 축제를 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2008년 처음 연 축제는 추자도 굴비를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연간 1만7000여 명이던 관광객은 지난해 4만1000명으로 늘었다. 제주도는 지난해 초 조례를 만들어 추자도를 찾는 관광객의 뱃삯을 절반 지원했다.

추자도=양성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