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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리뷰]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 1,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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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 1, 2

김탁환 글, 백범영 그림, 이가서

각 210쪽 내외, 각 9800원

이 책, 만만치 않다. 요모조모 둘러보면 볼수록 더욱 그렇다. 얼추 보니 소설의 외피는 갖췄다. 비록 황당무계하지만 주인공이 있고, 사건이 벌어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다 끝을 맺는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소설은 씌여진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활자'라는 틀을 빌렸으나 정치(精緻)하게 기획되고 치밀하게 계산된 종합 예술이다.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역사추리소설이란 장르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소설가 김탁환(37.한남대 문예창작과 교수)씨의 신작'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는 저자가 후기에서 "아홉 편의 전작 장편을 쓰는 동안 계속 미루었던 이야기"라고 고백하듯, 오랜 기간 단단히 작정하고 준비한 역작(力作)이다.

이야기는 타래에서 풀린 실처럼 아무렇게나 흘러간다. 현 시대의 탁환은 러시아에 갔다가 도스토예프스키 무덤 앞에서 흡혈귀에 물리고, 그 뒤로 조선 중기 사람인 아신이 자신의 전생(前生)이란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분명한 설명 없이 부여 현감 아신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낙화암에 하루에 한명씩 투신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주인공 아신은 술사 전우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이때 머리가 셋 달린 개 삼두견, 머리가 넷인 사두조, 꼬리가 아홉인 구미호 등 숱한 귀신과 영물(靈物)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작가는 '지괴(志怪) 소설'이라고 부른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추리와 팬터지를 결합한 장르라는 뜻이란다.

그러나 이 책이 만만치 않은 더 큰 이유가 있다. 무릇 글을 읽는다는 건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한줄을 읽고 아랫줄로 넘어가는 법. 그러나 이 책에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활자는 위에서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고 다른 것은 힘차게 치솟는다. 어떤 활자는 다른 것보다 몇 배가 크고 굵은 것도 있다. 더 흥미로운 건 80점이 넘는 삽화다. 용인대 백범영 교수의 작품. 글에서 묘사하는 갖가지 영물과 기괴한 사건이 곳곳에 배치된 그림으로 선명하게 제시된다. 저자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이러한 장치를 계획했다고 했다. 책에 나오는 해괴망측한 사건은 '조선왕조실록'등 역사에서 기록된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것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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