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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면 우리들 茶禮<차례>...어디로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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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0면

법 성포(전남 영광군 법성면) 포구가 바빠졌다. 추석 대목에 '영광굴비'를 대려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영광 지역에서 조기를 굴비로 가공하는 회사는 2백50여곳에 이른다. 법성포에만 2백10여곳이 몰려 있고 영광읍에 30여곳이 있다. 작업장마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의 차례상에 오를 굴비를 준비하는 산지에는 넉넉함이 넘친다.

굴비를 만드는 일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조기를 소금에 절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스무 마리를 한 두름으로 엮어 8m 높이의 대형 건조대에 널어 해풍에 말리면 굴비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잡았든 이곳에서 말리면 영광굴비의 족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는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 건조해야 할 물량이 밀렸습니다. 15일까지는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영광 현지 굴비 가공업자 중 매출액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청산유통의 최종환(51)사장은 "바빠서 정신이 없다"면서도 얼굴엔 여유와 웃음이 가득하다.

26년째 굴비 장사를 하는 崔사장은 1980년대 초 영광굴비를 서울 백화점 매장에 진출시키는 데 앞장선 주역이다. 태풍 피해 등 악재도 있었지만 올 추석 경기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예감이다. 추석 선물 주문이 지난 설 때보다 10% 가량 늘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평균 1백여 상자(한 상자에 25㎏)를 출하하다가 추석 대목을 맞은 지난달부터는 2백50상자씩 대고 있다.

올 추석의 경우 중저가 제품은 가격이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30만원 이상 하는 고가품은 10% 이상 올랐다"고 들려줬다.

요즘에는 길이가 20㎝ 이상인 것만 굴비로 친다. 1999년 10월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이 한국전통식품 표준규격을 만들면서 굴비의 '자격'을 이렇게 정했다.

崔사장은 "이 기준에 따라 20㎝가 안되는 것은 '엮거리'로 분류해 굴비로 만들지 않고 조기 상태로 판매한다"고 말했다.

큰 굴비는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싸다.치어(雉魚)까지 낚아올리는 저인망 어선이 활개를 치면서 25㎝ 이상 되는 굴비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는 게 崔사장의 푸념이다. 30㎝ 이상인 굴비는 워낙 귀하다보니 열 마리 한 세트에 1백20만원까지 나간다.

崔사장은 추석 대목을 지난해 말부터 준비했다. 알이 밴 25㎝짜리 상품(上品) 조기를 열 마리에 25만~28만원씩 수협 경매장에서 꾸준히 사모았다. 이를 냉동창고에 쌓아뒀다가 굴비로 가공해 35만~38만원씩에 백화점에 파는 것이다.

백화점은 이를 소비자에게 55만원 안팎에 판다고 보면 된다. 알을 배지 않은 것은 평균 30만원 정도에 팔린다.

국내 굴비 시장은 연간 5천5백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국산과 중국산이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국산 조기는 60~70%가 영광에서 굴비로 가공된다. 돈으로 따지면 연간 2천억원어치의 영광굴비가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팔리는 것이다.

崔사장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굴비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영광굴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나머지 굴비는 부산·목포 등지와 서울 가락시장·중부시장에서 만들어지고 수도권 일대에서도 생산된다.

영 광 지역에서도 법성포를 차별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년 전부터 별도 법인을 만들어 '영광 법성포 굴비'란 브랜드를 쓰고 있다. 영광굴비의 원조라는 사실을 부각하려는 전략이다.

굴비의 가공법도 많이 변했다는 게 崔사장의 귀띔이다. 70년대부터 법성포 일대에서는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 법성포의 먼바다에 해당하는 칠산 앞바다에서도 거의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목포 연안과 전남 홍도 부근의 추자도에서 잡아온 조기를 쓴다. 동남아 등지에서 잡은 조기도 있다.

崔사장은 "영광굴비라고 부르는 것은 조기의 원산지라기보다 굴비를 가공한 곳을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굴비는 해풍에 두세달 동안 바짝 말린 '건조굴비'가 대부분이었다. 낮에는 햇볕에 말리고 밤에는 억새풀로 덮어 이슬을 막으면서 해풍을 통과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냉동기술이 발달하고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어 딱딱한 굴비를 싫어하면서 '물굴비'가 득세했다. 70년대 들어 하루 또는 이틀만 건조한 물굴비가 나오기 시작해 80년대 이후에는 굴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건조굴비는 수분이 10% 정도만 있는데 반해 물굴비의 수분 함유량은 30% 이상이다.

崔사장은 "건조굴비는 주문이 있을 때만 생산한다"며 "가공기간이 길어 품이 많이 들고 크기가 줄기 때문에 물굴비보다 10%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법성포 굴비가 고집하는 고유의 가공법은 '섶간'방식이다. 조기에 소금을 문지른 뒤 3~6시간 염장을 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조기를 소금물에 담가 간을 맞추는 '물간'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는 게 崔사장의 설명이다. 조기를 섶간 방식으로 소금에 절이면 크기가 5~10% 줄어들지만 물간 굴비보다 맛이 좋다는 것. 좋은 소금은 양질의 굴비 생산에 필수다. 법성포는 최고의 천일염으로 꼽히는 백수·염산의 소금을 사용한다고 한다.

조기는 3~4월에 잡히는 봄조기를 더 쳐준다. 산란하기 전이어서 알이 많기 때문이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잡히는 겨울조기는 알이 없는 대신 살집이 많다.

굴비에도 기능성 바람이 불고 있다.

崔사장은 "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녹차 굴비·통보리 굴비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영광 법성포=글 김준현·사진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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