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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北村의 역사 특구化:경복궁~창덕궁 라인을 세계적 전통 공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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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북촌 살리기'는 아쉽게도 한옥을 보존하자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거나 모양새가 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하다. 가장 시급한 일은 6백년 역사도시의 인프라였던 옛 도시 가로(街路)를 살리는 일이다. 그 이후 되살아난 길을 따라 한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대안은 북촌 일대를 경복궁-창덕궁에 이어지는 '역사문화 지구'와 오늘의 서울 사람이 살아가는 '한옥 지구'로 이원화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특히 북촌 아랫마을 일대를 '역사도시 특구'로 지정해 문화주거 복합 지구로 만들어가길 제안한다.

역사문화 지구

현대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역사 공간을 보존하려면 각 공간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북촌을 매개로 한 역사문화 지구로 하기 위해서는 두 궁궐의 남단부를 도시 공간화하여 서로 연결해야 한다.

이는 무분별한 개발로 상처투성이인 역사의 기억장치를 지키는 보루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두 궁궐조차 고립된 유적으로 남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북촌도 옛 모습을 잃어 버리게 될지 모를 일이다.

특히 국립박물관을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 한가운데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은 북촌의 기반을 다지는 토대일 뿐 아니라 국립박물관 자체를 최상의 위치로 올려놓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국립박물관은 5천년 역사의 증거이고 문화적 정통성의 상징이다.

따라서 국립박물관을 이곳의 상징적 중심이 되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 들어서고 있는 용산 국립박물관을 감안해 정 어렵다면 백년 뒤를 생각하여 분관으로라도 남게 해야 한다. 국립 민속박물관의 경우 차선의 선택일 뿐이다.

여기다가 옛 규장각·사간원·소격서 터에 차고 앉은 국군기무사 자리에 국립박물관을 오게 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이 지하를 경복궁과 연결할 경우 경복궁 지하공간과 국립박물관이 하나의 공간으로 묶일 수 있다. 그럴 경우 고궁박물원(故宮搏物院)인 중국의 자금성에 뒤지지 않는, 역사유적과 박물관이 하나가 된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국립박물관과 창덕궁을 역사회랑으로 묶어, 경복궁-국립박물관을 거쳐 자연스럽게 창덕궁으로 갈 수 있게 하면 더 좋다. 구상을 조금 더 넓혀 세종문화회관과 종묘를 잇는 문화인프라를 구축한다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콩코르드 광장 일대나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런던의 대영박물관 지구 못지 않은 문화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

한옥지구

북촌 중심부가 국립박물관을 가운데 두고 경복궁-창덕궁을 아우르는 문화 인프라를 형성한다고 치자. 여기서 북촌의 한옥 마을이 이와 짝을 이루면 금상첨화가 된다. 두 궁궐 사이의 한옥 마을은 옛 서울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이런 구상과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북촌 일대는 가회동·삼청동·계동의 일부 한옥 밀집지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국적 불명의 현대 건축으로 대치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아직 남아있는 역사 가로인 골목을 되살리면서 한옥 보존지구와 고밀도 전통주거 지구로 함께 개발할 필요가 있다.

골목이 있어야 마을이 사는 것은 당연한 소치다. 최소한의 소방 도로만 확보하고 동네마다 공영 주차장을 두어 골목을 보전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통적 한옥을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전통 한옥은 모두 단층이다. 복층 고밀도 한옥을 만든다면 현대 도시가 요구하는 수요에 응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촌 일대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전통 형식의 고밀도 주거지구로 변한다.

유념할 사실은 옛 한옥을 부수고 들어선 다세대 주택의 외관과 대문은 현대적 한옥 형식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 짓는 다세대 주택이 전통 건축요소를 도입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창작(건축 설계와 시공)의 자유는 역사와 문명의 틀 안에서 보호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건축의 현대화는 학자와 작가가 함께 해야 한다.

문화·주거 복합지구

북촌의 재배치를 위해선 북촌 아랫마을을 살리는 게 시급하다. 과거 운현궁·탑골공원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지역은 장안에서 가장 번성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요즘 인사동·낙원동 일대는 도심의 뒤안길이자 변두리 같은 모습이다.

기실 이 일대는 북한산 일대와 경복궁·창덕궁이 바라보이고 인왕산과 낙산이 어우러진 곳이다. 따라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남단부같이 최고의 주거지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곳엔 문화공간과 주거공간이 함께 하는 맨해튼 뮤지엄타워 같은 문화주거 복합건축이 들어서는 게 마땅하다. 고밀도 복합건축이 성공적으로 들어선다면 쾌적한 삶을 보장하는 최고의 역사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경복궁·국립박물관·창덕궁이 세종문화회관·종묘와 어우러지는 문화 인프라를 중심으로 북촌을 전통 한옥과 고밀도 신(新)한옥으로 바꾸어 가자. 여기에 더해 북촌 아랫마을을 문화주거 복합건축으로 만들어 강북 최고의 국제적 주거지역으로 만들자. 그것이 바로 북촌 현대화의 바른 길이다.

이름하여 북촌 르네상스다. 그것은 북촌 문화인프라-한옥 마을-아랫마을의 문화 주거복합체 세 가지가 어울리며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울 때 실현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가 있던 그 자리에 다시 예전의 학교들이 돌아오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낙원동에서 탑골·철물교를 지나던 물길을 살려 북한산에서 청계천에 이르는 자연의 흐름을 이으면 강남의 어느 마을보다 뛰어난 곳으로 바뀐다. 이처럼 북촌 일대를 자연과 문화 인프라가 어우러진 곳으로 만드는 게 바로 르네상스다.

보존할 것은 철저히 보존하고, 동시에 국가적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4대문 안 최고의 주거 지역을 북촌과 아랫마을에 세우는 작업이 북촌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이를 위해선 중세 도시 파리를 현대 도시 파리로 만든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결단 같은 것이 필요하다.

명지대 건축대학장

6백년 전 서울은 유교의 도시원리와 풍수지리의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중세 최고의 계획 신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역사 흔적을 보존하지 못한 채 정궁인 경복궁·창덕궁·종묘만 제 모습을 지키고 있다. 그 사이에 놓인 북촌-. 한마디로 그것은 역사의 기억장치다. 따라서 경복궁과 창덕궁 복원공사에 이어 북촌을 되살리는 일도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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