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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그룹 3세경영 워밍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7면

최후의 개성(開城)상인으로 꼽히는 이회림 명예회장의 동양화학그룹에 3세 시대가 열렸다. 손자인 우정(33)씨가 올해 초 그룹 계열사인 불스원의 상무로 입성했다. 그는 이수영 현 회장의 차남으로 서강대와 스위스 IMD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李상무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무차입 현금경영을 배워왔다"며 "이 철학을 불스원에 접목 중"이라고 말했다.

동양화학뿐 아니다. 한국타이어와 경방·대성산업 등 중견그룹들에 '3세 경영'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한국 재계 역사가 반세기를 넘어서면서 기업사가 오랜 외국에서나 볼 수 있던 '3대(代)기업'을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활발한 3세 경영참여=한국타이어그룹도 3세 경영 시대에 접어들었다. 효성 창업주인 고(故)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 회장의 장남 현식(33)씨가 올해 전략기획담당 상무로 승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차남인 현범(31)씨도 상무보로 승진, 광고홍보를 맡았다. 고 趙회장이 창업한 효성그룹은 이보다 먼저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장손자이자 조석래 효성 회장의 장남인 현준(34)씨는 지난해 ㈜효성 전략본부 전무로 승진했고, 차남인 현문(33)씨와 현상(31)씨도 각각 전략본부 상무와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고(故)김용완씨의 경방그룹도 3세가 경영일선에서 활동 중이다. 고 金회장의 아들인 김각중 경방 회장은 지난 1월 보유 중인 경방 지분 4.3% 모두를 장남 김준(39) 전무와 차남 김담(37)상무에게 넘겨줬다. 金전무는 경방의 신규사업을 관장하다 올해부터 구매분야를 맡고 있고, 金상무는 기획분야에 이어 지난달에는 백화점 사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도 지난 6월 영국 런던대를 졸업한 장남 김정한(31)씨를 대성산업 연구개발실 이사로 임명했다. 金회장은 대성의 창업주인 고 김수근 회장의 장남이다.3세경영체제를 진작 굳힌 중견그룹도 많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9월,3세인 장세주(49)사장이 삼촌들과 17개 계열사를 5개사로 계열분리한 뒤 회장으로 승진해 사실상 3세 경영승계를 마무리했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차남인 문석(41)씨는 이미 1998년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아오고 있으며,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윤(49)씨는 2000년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대그룹은 벌써 3세 시대〓LG는 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 대그룹 중 가장 먼저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동생인 구본준씨는 LG필립스LCD 사장을 맡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재용(34)씨가 지난해 3월 삼성전자 상무보로 경영에 참여했다.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제일제당과 한솔등도 3세 경영 중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들도 경영일선에 뛰어들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외아들인 의선(33)씨는 올해 현대차 전무로 승진해 국내영업을 담당하고 있고,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의 외아들 지선(31)씨는 지난 3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김태진 기자

'젊은 회사' 기대 속 일부선 "검증 필요"

3세들은 대개 해외유학파로 신선한 혁신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많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장세주 회장이 승계하면서 젊은 회사로 변신 중"이라면서 "철강산업을 첨단화하기 위해 원료를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등 정보기술(IT)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경영풍토로 정평 난 한국타이어의 조현범 상무보와 경방의 김담 상무도 굴뚝산업 중심의 사업구조에 유통·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을 보강하려 시도하고 있다.

삼양사 김윤 부회장은 정밀화학 및 의약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대성산업 김정한 이사는 그룹의 차세대 사업인 IT부문에 대한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1980년대 후반 이후 2세들이 대거 승계하면서 유통과 정보통신 등 신산업에 진출했지만 상당수가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등 쓴맛을 봤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연구원 이수희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와 기업 투명성이 많이 개선돼 3세들의 경영참여는 능력만 제대로 검증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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