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화재>父:父子: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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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6면

전국경제인연합회 김각중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 회장의 부자(父子)2대에 걸친 갈등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재벌 오너의 집합체로 재계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전경련과 국내 경제단체 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대한상의는 서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역협회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할 때도 내심 자기 단체 이름이 앞서 거론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겉으론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다투는 일도 전혀 없다.

그런 두 단체가 지난달 하순 한판 붙었다. 사실상 전경련의 산하단체인 자유기업원이 "상의법은 폐지돼야 한다"며 불을 질렀다. 그러자 대한상의가 "우리를 위축시키려는 저의"라며 발끈하면서 사과를 요구했고, 전경련은 부랴부랴 해명서를 보내 사태는 5일 만에 서둘러 봉합됐다.

30여년 전인 1960년대 말에도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크게 싸웠다. 이때는 상의가 원인제공을 했다. 상의는 당시 정치권을 움직여 전경련 등 사회단체들을 상의 산하로 하기 위한 법제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전경련 등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전경련의 산증인인 김입삼(80) 상임고문은 "며칠만 늦었어도 이 법이 제정됐을 정도로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전경련은 백방으로 노력해 결국 이 법안을 무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의 두 경제단체 회장은 이번에 갈등을 빚은 현재 회장들의 부친들이었다. 전경련은 김각중 회장의 선친인 고(故) 김용완 경방 회장이, 대한상의는 박용성 회장의 부친인 고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이 맡고 있었다. 부자(父子)가 2대에 걸쳐 각기 전경련과 대한상의 회장을 맡는 것도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다. 게다가 김용완씨는 10년, 박두병씨는 6년씩이나 단체장을 지냈으며 김각중·박용성 현 회장들은 모두 연임 중인 장수 회장들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장들이 갈등을 빚거나 사이가 나쁜 것은 전혀 아니다"고 말한다. 실제 지난달의 갈등도 김각중 회장 때문에 조기 수습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전경련 임원들은 상의가 너무 심하다며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강경 대응론을 들고 나왔지만, 金회장이 "왜 점잖지 못하게 행동했느냐, 자유기업원이 잘못했다"며 결론을 내리고 관계자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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