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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방형 인사 뿌리내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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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와 가까운 한 선배는 지난해 9월부터 정부투자기관의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초 선배는 임원 모집공고를 보고 그 기관의 임원이었던 지인에게 지원해도 될지를 물었다. 행여 이미 내부적으로 뽑을 사람을 다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공고를 낸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들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지인도 선배에게 "응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배는 원서를 냈다. 그는 다른 민간회사에도 원서를 내놓은 상태여서 큰 부담없이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민간회사의 결과를 기다리느라 입사 여부를 망설이자 그 정부기관의 사장이 직접 찾아와 같이 일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 선배는 사장과 뜻밖의 만남에서 사장의 경영혁신 의지에 이끌려 조건이 더 좋은 민간회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기관행을 택했다.

정부 인사들과는 전혀 연줄이 없는 필자도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 정부의 개방형 직위에 응모해 현재 중앙부처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민간에서 익힌 인사전략 노하우를 정부기관에서 발휘하고, 정부 부문을 함께 익혀서 민간과 정부를 모두 경험한 전문가가 되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요즘 내 주위에는 공직에 관심을 갖고 문의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히딩크 감독의 경우를 보면 현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인사시스템의 취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히딩크도 초기에는 한국 축구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해 잦은 구설에 올랐다. 국가대표 간의 국제경기에서 대패해 한때 '5대 0'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심지어 그의 사생활까지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당시 축구협회는 각종 통계와 기록을 통해 입증된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고 계속 두터운 신임을 보냈다. 결과는 '월드컵 4강 신화'였다. 히딩크는 인재를 사회적 자산으로 여기고, 한 개인으로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의 필요를 일깨워 주었다.

정부의 인사가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언론으로부터 '낙하산 인사'니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때론 인선 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선과정의 공정성까지 훼손당하는 경우도 겪는다. 이럴 때면 중앙인사위원회의 간부로서 정부 인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중앙정부 인사로는 정무직을 비롯한 200여개의 핵심 직위와 3500여개의 산하단체 임원 자리가 있다. 정부 인사는 필요한 질책을 받고, 프로세스와 인선 내용도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요직 인사가 있을 때 당사자를 희화화하거나, 단발성으로 이벤트화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공격하는 경우는 자제되었으면 한다.

정부 인사 시스템의 발전을 위해서는 표면적인 현상을 넘어서 더 큰 틀과 큰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즉, 정부 전체의 인사정책.인선과정.내용.결과가 함께 평가되고 아울러 역대 정부와도 엄격하게 비교될 때, 시스템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

사회 전체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금융 등의 물적 자원뿐 아니라 인적 자산도 시스템에 의해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우리도 학연.지연 등 소위 연줄 위주의 사회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시스템 중심의 사회로 가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김영규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