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앞두고 눈길 끄는이슬람문명서두권]"문화 다양성 不인정 서양은 자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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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년을 맞아 이슬람 문명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책 두 권이 이번 주 번역 출간된다. 하나는 세예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쓴 『문명의 대화』(지식여행 발간)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 문명 관련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버나드 루이스의 『무엇이 잘못되었나』(나무와 숲 발간)이다. 두 책 모두 9·11 사태 이전에 쓰여졌기에 9·11사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방과 중동 간 갈등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는 공통적 장점을 갖고 있다.

편집자

하타미 이란 대통령과 관련된 1998년의 일화 하나. 당시 그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문명의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연설을 해 주목을 받았다. 그의 제안에 힘입어 유엔은 2001년을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했다. 하지만 바로 그해 세계를 경악시킨 9·11 테러가 발생함으로써 '문명간 대화의 해'란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하타미 대통령의 논설집 『문명의 대화』가 번역 출간됐다. 미국과 오랜 기간 예민하게 대립해 온 이란의 대통령 입을 통해 '대화'의 색다른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듯하다. 하타미 대통령은 문명간 대화를 주창하면서 동시에 무조건적인 반(反)서구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서방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임을 분명히 한다.

이슬람 세계의 주권과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 달라는 요지로 서양의 자성을 촉구하는 하타미 대통령은 이란과 이슬람권 내부의 문제도 숨기지 않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한국이슬람학회 회장)교수는 "종교적 독선에 갇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끌고가려는 이슬람권의 급진적 보수주의에 강한 비판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적용하는 일은 서양과 이슬람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견해도 이어진다. 이희수 교수는 "서양이 잘못했다면 그에 대응하고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문호를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하타미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신학·철학·교육학을 전공했고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한 학자이자 정통 이슬람 종교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슬람 세력 내에서 온건파의 흐름을 이끄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대통령 취임 후 외교의 기본을 대결에서 대화로 전환시킨 것은 하타미 대통령의 이 같은 철학 때문으로 보인다.

하타미 대통령은 이 책에서 '한국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기독교 중심의 서방세계와 이슬람 중심의 중동 세계 사이에서 사랑과 평화의 메신저로서 문명이 더 한층 빛나는 동방의 한국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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