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죽음 부른 2889% 사채 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유흥업소 여종업원 등을 상대로 고율의 이자 놀이를 한 사채업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검거됐다.

유흥업소 여종업원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25일 불법 사채업을 해 온 혐의(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포항지역 사채업자 30명을 붙잡아 이모(38)씨 등 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김모(48)씨 등 2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2006년 1월부터 최근까지 자살한 유흥업소 종업원 이모(32·여)씨와 김모(36·여)씨에게 한 차례에 100만∼500만원씩 빌려준 뒤 최저 연 133%에서 최고 2889%의 이자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이를 다시 원금에 넣어 이자를 청구하면서 두 사람의 빚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사채업자들은 이씨와 김씨가 제때 빚을 갚지 못하자 다시 300만원을 빌려주면서 원금 미상환액과 이자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250만원을 공제하고 50만원만 주기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자제한법은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 돈을 빌려줄 경우 연 30% 이상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숨지기 직전 원금과 이자를 합쳐 각각 1억원의 사채가 있었으며 서로 보증을 한 상태였다. 이씨 등 사채업자들은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해 두 사람에게 ‘돈 갚아라’ ‘빨리 빚 갚아라’ ‘(술집에) 찾아가겠다’는 등의 전화를 하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하루 40∼50차례씩 채무 변제를 강요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이 고율의 이자를 견디지 못하고 빚을 내 빚을 막다가 더는 갚을 능력이 없게 되자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며 “빌린 돈은 생활비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채업자들은 2008년 1월부터 최근까지 유흥업소 종업원 등 80여 명과 1400여 차례에 걸쳐 모두 25억원의 사채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포항시 남구의 유흥업소 여종업원으로 일하던 이씨와 김씨는 사채가 늘어나자 이를 비관해 지난 7, 8일 각자 자신의 집에서 목 매 자살했다. 10일에는 이씨와 같은 업소에서 일하며 친하게 지내던 문모(23·여)씨가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손님이 줄면서 수입이 거의 없는 유흥업소 종업원이 적지 않다”며 “이들이 생활을 위해 사채를 쓰는 경우가 많아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들의 통장거래 내용과 통화기록,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기록 등을 토대로 수사에 들어가 포항지역 불법 사채업자 30여 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유흥업소 종업원의 상당수가 불법 사채업자로부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포항=홍권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