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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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월드컵 16강의 강(强)은 진짜 ‘강함’의 뜻을 지니는 한자다. 그러나 강도(强盜)의 강은 그 도둑이 강해서 붙이는 글자가 결코 아니다. 일제(日帝)가 힘이 뛰어나 한국을 강점(强占)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힘을 앞세워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게 강도요, 제 힘만을 믿고 남의 땅을 억지로 점령하는 것이 강점이기 때문이다.

강도나 강점이라는 단어에서 강이라는 글자의 새김은 ‘강하다’가 아니다. ‘억지로’ ‘제멋대로’의 뜻이다. 강이라는 한자의 이런 쓰임새는 부지기수다.

제 주장을 무리하게 관철하려는 자세를 강변(强辯)이라고 한다. 강도처럼 남의 재산이나 물건 등을 빼앗는 게 강탈(强奪)이다. 제 힘만을 믿고 남을 자신의 길로 끌어들여 억누른다면 강박(强迫)이요 강핍(强逼)이다. 이성(異性)의 상대는 안중에도 두지를 않는데 열심히 추파(秋波)를 던져 그 마음을 사려고 나서면 강풍정(强風情)이다.

지하철에서 사고 싶지 않은 물건인데 억지로 사라고 권하면 강권(强勸)이요, 내키지 않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면 강요(强要)다. 모두 상대방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가 내키는 대로 상황을 몰고 가는 강제(强制)의 행위다.

이런 억지를 부리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사리(事理)에 들어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게 강사탈리(强詞奪理)다. 견강부회(牽强附會)식으로 경우에 맞지 않는 사례를 억지로 끌어다 붙이면 강부(强附)이고, 그렇게 터무니없이 우겨대는 말이 강사(强辭)다.

말하자면 모두 ‘억지 춘향’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식의 지록위마(指鹿爲馬)도 있지만, 아예 오리를 학으로 둔갑시키면 ‘강부변학(强鳧變鶴)’이다.

김정일이 북한을 강성대국(强盛大國)으로 만드는 중이라고 하는데, 대다수의 국민을 굶주리게 만들면서 무슨 강성(强盛)을 운운한다는 말인가. 혹여 억지로 번성(繁盛)한 채 꾸미는 나라, 강요와 거짓이 충만한 나라라는 뜻이 아닐까.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군사훈련을 하는 한국과 미국을 향해 요즘 북한이 보이는 태도도 억지로 충만하다. ‘방귀 뀐 놈이 먼저 성을 낸다’는 식이다. 그런 억지 춘향 식의 사람을 ‘강패(强悖)하다’고 표현하는데, 어원은 아니겠지만 어째 ‘깡패’ 비슷하게 들려 책장을 더 뒤적이게 만든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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