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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는 양념? 시청자 마음 잡는 ‘미녀들의 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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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0년 전만 해도 나이 서른이면 누구나 결혼을 생각했다. ‘서른 즈음에’라는 김광석의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파고,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절절히 공감되던 시대.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나이 서른에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부모님들의 우려 섞인 한숨 소리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30대 중반에도 결혼은 차치하고 여전히 연애를 즐기는 당당한 싱글족이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다. 이 쿨한 세대들은 결과를 목적으로 누군가를 만난다기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러브 스위치’라는 새로운 짝짓기 프로그램의 탄생은 이런 세대들의 변화된 연애관과 무관하지 않다.

19일 자체 최고 시청률(2.5%·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를 기록한 채널 tvN의 ‘러브 스위치’는 30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이 벌이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30명의 여성은 그날 출연한 남성의 외모·라이프스타일·단점 등을 보고 들으면서 그를 선택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러브 스위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형식은 지극히 직설적이다. 과거 남녀 비율이 똑같았던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흔히 벌어지던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는 식의 심리게임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남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어떤 모습을 보였을 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MC는 불이 꺼진 여성에게 다가가 그 이유를 묻는다. 답변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외모가 별로예요.” “경제력이 없어 보여요.” 이런 뭉뚱그린 표현은 그나마 양반이다. “붕 띄운 머리가 맘에 안 들어요.” “스타일이 너무 구식이에요.” “머리에 비해 어깨가 너무 좁아요.” 이런 구체적인 지적(?) 앞에 남성 출연자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서너 시간의 촬영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선택이기 때문에 이런 지적들은 대부분 외모나 지위, 경제력 같은 외적인 것에 치중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프로그램의 솔직·대담함(?)이 현재 젊은이들의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이 짝짓기 프로그램은 실상 짝짓기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한 남자를 세워 두고 수다를 떠는 여성들의 심리가 오히려 더 관전 포인트다. 그 수다를 듣다 보면 작금의 여성들이 남성의 어떤 면에 호감을 갖고, 어떤 면에 불쾌해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여성 시청자라면 그들의 수다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외모지상주의적이고 금전만능주의적이라고 할지라도.

재미있는 것은 왜 여30 대 남1의 비율일까 하는 점이다. 왜 거꾸로의 조합, 즉 남30 대 여1은 안 될까. 여기에도 치밀하게 준비된 남녀 간의 심리가 깃들어 있다. 만일 여성 1명을 세워 두고 남성 30명이 마치 품평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상상해 보라. 남성 30명이 함께 서 있을 때 생겨날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떤 면으로 보면 성희롱처럼도 보이는 그 아슬아슬함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성들의 수다보다 여성들의 수다가 훨씬 부드럽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일대일로 만날 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집단으로 모여 있으면 여성들은 술술 풀어내는 심리가 있다. 게다가 ‘러브 스위치’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의 주시청층은 아무래도 여성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짝짓기라는 소재 이외에 출연하는 30명의 여성이 보여 주는 다양한 스타일도 이들 여성 시청자에게는 관심거리가 된다. 리포터·작가·레이싱모델부터 컨설턴트·강사·최고경영자(CEO)까지 다채로운 직업은 그녀들의 스타일과 어우러져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들의 거침없는 속내를 끌어내는 것은 대본 없는 100% 리얼이라는 장치다. 물론 이 장치는 베테랑 MC인 이경규와 신동엽에 의해 유도된다. 여성 파트를 맡은 신동엽은 여성들의 답변에 토를 달거나 의미를 확장해석하기도 하고, 그네들의 속내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특유의 깐죽거림은 이 리얼을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웃음으로 전환시킨다. 한편 남성 파트를 맡은 이경규는 여성들의 공격성 발언에 맞대응을 하기도 하고, 출연한 남성의 속내를 대신 표현해 주기도 한다.

‘러브 스위치’는 짝짓기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거기서 집중하는 것은 짝짓기가 아니라 거기 서 있는 남녀들이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남녀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을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물론 그렇게 호기심에 바라본 결과는 때론 참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은 외모와 조건과 경제력에 치중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가벼워진 프로그램의 성격이면서 동시에 작금의 젊은이들이 갖는 만남의 성격이기도 하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명제가 앞에 와 있으면 오히려 멀리 달아나 버리고, 가벼운 연애에 심취하며 그것을 통해 차츰 진지해지기를 바란다. 생각해 보라. 과거 ‘사랑의 스튜디오’의 딱 맞춰진 남녀 비율이 주는 어떤 중압감을(우리는 모두가 연결되기를 희구한다). 하지만 30 대 1의 비율에서는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편안함이 존재한다. 남은 것은 그 과정을 즐기는 것뿐이다.

글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thekian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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