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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제 고향 부산에 北 현희가 온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한국 여자탁구의 에이스로 성장한 유지혜(26·삼성카드)는 북한의 김현희를 처음으로 만났던 당시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현희가 한국에 온대요. 그것도 제 고향인 부산에요.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얼굴을 봤지만 고향에서 열리는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현희를 만난다니 기분이 남다를 수밖에요. 마치 이산가족을 만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29일 오후 태릉선수촌 승리관에서 만난 유지혜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성격이 차분한 그녀도 흥분한 기색이었다.

"마음같아선 부산시내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고 싶어요. 태종대도 가보고, 해운대에도 들러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싶고요.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유지혜와 김현희는 90년 이후 국제대회에서 여러차례 만났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대하던 현희도 시간이 갈수록 살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현희는 이제 두살 위의 유지혜를 꼬박꼬박 '언니'로 부른다고 했다(북한 선수들은 서류에 정확한 나이를 기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희의 실제 나이는 모른다고 했다).

국제대회에서 만날 때면 "지혜 언니는 결혼 안 하느냐. 몸 상태는 어떠냐"고 안부를 묻고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은퇴한 북한의 이분희가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과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만났던 두정실의 근황도 현희에게서 전해들었다.

유지혜를 지도하던 현정화 코치도 한마디 거든다. "저는 분희 언니와 하룻밤만 같은 방에서 지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예전 일을 회고하며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거든요."

유지혜는 지난해 카타르오픈에서 김무교(대한항공)와 짝을 이뤄 북한의 김현희-김향미 조와 여자복식 맞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유-김 조가 세트스코어 2-1로 승리. 김현희는 다가와 축하의 악수를 잊지 않았다.

유지혜 역시 여자단식 챔피언에 오른 김현희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보냈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현희는 침착한 선수예요. 기량도 세계 정상급이고요. 그러나 우정과 승부는 별개지요. 현희가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길 바라지만 맞대결을 해야 한다면 승리를 양보할 수는 없어요."

유지혜는 어느새 '승부사'로 돌아가 있었다.

정제원 기자

세트스코어 1-1. 처음으로 만난 북한 선수에게 지고싶지는 않았다. 앳된 얼굴의 소녀는 연신 땀을 훔쳐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라켓을 휘둘렀다. 언니뻘인 유지혜는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고개를 떨군 북한 선수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다른나라 선수들을 꺾었을 때의 기분과는 확실히 달랐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9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유스호프 탁구대회에서였다.

<관계기사 s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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