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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응급 환자가 다섯 시간씩 기다리는 런던, 그래도 좋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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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런던홀릭
박지영 글·사진
푸르메, 373쪽
1만6000원

이 책은 런던과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의 일기장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는 3년 전 서울 생활을 접고 런던에 정착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본성은 감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런던을 고샅고샅 뒤적였고 기록했다. 저널의 딱딱한 문장 대신 유쾌하고 발랄한 문장에다 런던의 일상을 포갰다.

책은 ‘우리 동네엔 엠마 톰슨이 산다’란 꼭지로 문을 연다. 저자의 옆옆옆옆옆옆옆집에 영국의 유명 배우 엠마 톰슨이 산단다. 그래서 지금 자랑하는 중? 아니다. 이웃집에 사는 엠마 톰슨의 모습에서 저자는 영국인의 한 표상을 발견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대배우가 철지난 비닐 점퍼에 낡은 배낭을 메고 다니는 걸 보고 무릎을 쳤다. 남의 눈에 띄는 걸 싫어하고 소박한 삶을 즐기는 영국인의 모습이다.

자전거를 타고 시정을 보는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나 도시 곳곳에 박혀있는 공원에서 독서에 파묻힌 영국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동네 도서관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미술관이며 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런던은, 아름다워라, 과연 낭만과 예술의 도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덮어놓고 낭만적인 순 없다. 런던에도 사람이 산다. 그러니 온갖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공짜라고 자랑하던 영국 의료 체계는 한심했다. 응급 환자가 다섯 시간씩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선 사투를 벌여야 한다. 학교 배정을 받지 못해 항의를 해도 공무원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 모든 역경을 무수한 공원과 미술관과 극장과 박물관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예술과 낭만이 흐르는 런던이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란다. 런던이 배경인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는 이런 인상적인 내레이션이 나온다. ‘사랑은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Love actually is all around).’ 런던 중독자인 저자는 이 내레이션을 이렇게 비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낭만은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Romance actually is all around).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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