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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대재앙] "만삭 아내 시신이라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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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진해일이 휩쓸고 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의 한 해안가. 살리 무함마드(43)는 5일 아침부터 수습되지 않은 시신 주변을 맴돌고 있다. 1주일째 제대로 먹지 못한 그를 지탱시키는 것은 지진해일로 실종된 아내와 딸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뿐이다.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째였다. 살리는 "새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놓고 고집을 부리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호주에서 기계 수리공으로 일했던 살리는 4년 전 이슬람에 매료돼 이곳 반다아체로 왔다.

쓰나미가 그의 집을 휩쓴 지난해 12월 26일 살리는 비자 갱신 때문에 고국인 호주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방에는 새로 태어날 아들에게 신겨줄 손가락만한 하늘색 신발이 담겨 있었다.

메단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이었다. 난리통에 비행기도 없었다. 세 배나 오른 암표를 구해 지난 3일에야 반다아체에 도착했다. 그러나 보금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내가 머물렀다는 3㎞ 떨어진 친척의 집도 흙밭으로 변해 있었다. 살리는 "주검이라도 찾아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다아체에는 살리처럼 졸지에 외톨이가 된 수천명이 낮에는 해변가의 시신더미를 뒤지고, 밤에는 임시로 마련된 천막에서 지내고 있다. 현지에는 각국의 구호단체들이 공급하는 구호물자가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피해지역 복구는 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다. 통신 등이 차츰 정상화될 뿐 수십만명의 이재민은 끝 모를 천막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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