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파 이야기] 2차 대전 미국·일본 승패 레이더 기술이 갈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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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김인석 교수

"모기떼가 나타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대적으로 진주만을 공습하려고 몰려오는 수많은 일본군의 비행기 편대를 관측한 미군 레이더기지 장교가 다급하게 본부에 보고하는 전화음성이었다. 미군 수뇌부는 이를 빌미로 2차 대전에 참여할 목적이었는지, 알았다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진주만이 폭격당한 뒤 전쟁 개입에 반대하던 미국의 젊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잽스(미국인들이 일본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호칭)를 죽이자고 군에 자원했다. 결국 전쟁은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후 일본은 전쟁의 패인 중 하나가 레이더가 없어서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현재는 일본이 개발한 레이더가 미군 최첨단 전투기의 제일 앞머리에 장착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레이더 기술은 전파를 쏘아 목표물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전파를 잡아 그 정체를 알아내는 기술이다.

전자레인지가 이 레이더 기술에서 나온 배경도 우연이었다.

어느 날 레이더 앞에서 종일 보초 서던 병사가 이유없이 죽었다. 사인을 분석하기 위해 해부한 결과 내장이 말라 있었다고 한다. 레이더에서 사용한 전파가 인체 안의 물 분자를 가열해 말려버렸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이용해 개발한 것이 전자레인지다. 눈에 보이지 않고, 물체를 통과하는 힘이 있는 전파는 물분자(H2O) 중 수소원자 H를 움직여서 마찰열을 일으킨다. 수소원자를 초당 수십억번씩 서로 비벼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때 발생하는 열도 엄청나다. 전자레인지에 음식물을 넣으면 순식간에 겉과 속이 동시에 익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레인지에 넣는 음식물에 물 분자가 없으면 가열되지 않는다. 물기가 없는 드라이아이스나 순수한 얼음은 전자레인지 안에서 녹지 않는다. 그렇지만 물기를 조금이라도 바르고 가열하면 녹일 수 있다. 그러나 물체를 태울 수는 없다. 그래서 조금 탄 음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외선 발생 장치를 전자레인지에 장착하기도 한다.

김인석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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