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책 없는 두 청춘이 다시 만난 건, 그날 늦은 저녁 서울역 대합실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막막했던 둘은 대합실 복판에서 동전을 던져 어느 노선을 탈지부터 정했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은 대구루루 굴러 경부선 앞에서 멈춰 섰다. 경부선? 나쁘지 않았다. 서울에서 멀리 갈 수 있었으니까. 30분쯤 뒤 우리는 부산행 비둘기호 열차에 올라탔다.
그 다음 얘기는 시시콜콜 늘어놓지 못하겠다. 계획도 없고 준비도 없이 비상금 몇만원 달랑 챙겨 나온 두 청춘이 열흘간 객지 떠돌며 겪었을 일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비상금 몇만원도 집 나온 지 사흘째 삼천포, 그러니까 지금의 사천에서 태풍을 만나 예상치 못한 지출로 홀랑 까먹는 바람에 무전여행 신세를 면치 못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희미한 미소 머금으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포항에서 동해안 따라 히치 하이킹으로 올라왔던 일, 막걸리 얻어 마시다 끝내 드잡이를 했던 대구 계명대 학생, 동해안 어느 간이역 나무의자 위에서 옹크리고 자는 딱한 청춘을 한참 쳐다보다 서울행 기차표를 사줬던 아저씨…. 아, 순천 시외버스터미널도 생각난다. 닷새째였나? 의기 투합했던 두 청춘은, 순천 터미널에서 의견이 갈려 서로 다른 버스를 탔다.
여행기자가 되어 전국을 떠도는 지금. 큰 배낭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요즘의 청춘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내 가슴도 덩달아 부풀어 오른다. 몇 마디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방향이 맞으면 차를 태워주기도 한다.
청춘은 세월과 관계없이 싱그럽다. 요즘 길 위에서 만난 청춘은, 20년 전의 대책 없는 청춘과 차이가 없다. 행색은 꾀죄죄하지만 표정에 구김살이 없다. 청춘의 눈은 늘 맑고 청춘의 발걸음은 늘 씩씩하다. 그들도 20년쯤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을 터다. 청춘들아, 여행을 떠나라. 더 넓은 세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손민호 기자